바이크로 둘러보는 일본 견문록(23회)
미마니에치젠조 縣에서 나가노 市까지 / 이정재 박사
위드타임즈 기사입력  2021/10/2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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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적지인 일본의 나가노 시  [ 사진 제공=이정재 ]



미나미에치젠조 현(縣)의 민박집에서 친절하고 편안한 식사와 잠자리를 대접받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출발하는 아침 날씨가 좋아 오늘 여행도 별 탈 없이 진행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 일정은 후쿠이 시(市)의 미나미에치젠조 현(縣)에서 나가노 시(市)까지로 거리는 약 343km, 예상 이동 시간은 약 6시간 40분 정도이다.

 

이 길도 일본의 위쪽 해안 길을 따라가다 조에쓰 시(市)에서 우회하여 일본의 대표적인 산악지대인 나가노 시(市)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일본의 해안 길과 산악 길을 모두 지나가야 하는 쉽지 않은 코스이다. 더군다나 산이 깊고 험하기로 소문난 일본의 중부산안지대를 관통해야 하는 코스로 시간이 지체되어 밤길을 가거나 날씨가 좋지 않아 비라도 내리면 매우 위험할 수 있어 서둘러 가야 했다.

 

일본의 위쪽 바다는 우리나라의 동해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 해안 길을 달릴 때마다 우리나라의 동해안의 7번 국도를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곤 했다.

 

나는 전국을 다녀 봐도 우리나라의 바닷길 중 동해안의 7번 국도처럼 아름다운 곳을 만난 적이 없다.

 

맑고 푸른 바닷물, 도로의 길가에 자리한 수려한 산이며 아기자기하면서도 빼어난 경관을 가진 해안을 달리다 보면 나 또한 이 동해의 7번 국도의 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그런 동해의 7번 해안 길이 이곳 일본에도 있는 듯하여 참으로 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일본의 바닷길을 감상하며 한참 달리니 드디어 중간목적지인 조에쓰 시(市)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해안 도시로서 이곳에서 우회하면 일본의 중부 산악지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입구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해결할 생각으로 적당한 곳을 찾아 달리니 마침내 길가에 있는 꽤나 큰 규모의 휴게소가 나왔다.

 

이곳에서는 식당이나 편의점뿐만 아니라 각종 해산물을 파는 가게들이 여럿 있었다. 먹기 좋게 손질을 해놓은 초밥이나 해산물을 골라 이웃 식당에서 먹을 수 있게 되어 편리하였다.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라 그런지 우리나라에서 꽤 비싸게 팔리는 초밥이나 해산물을 상당히 저렴하게 팔고 있어 아낌없이 골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점심 식사 후 잠시의 휴식을 취한 후 서둘러 길을 떠났다. 

 

그동안의 바닷길과 달리 이 길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뚫린 곳이라고는 푸른 하늘밖에 없어 보였다.

 

병풍처럼 우뚝 솟은 산과 깊고도 넓은 계곡이 마치 기찻길처럼 기다랗게 이어져 하늘을 향하고만 있는 듯하였고, 나는 하늘로 이어진 푸르른 밀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였다.

 

‘어떻게 이런 밀림의 산속에 길을 내었을까!’ 하는 감탄을 하며 달리고 있을 때 이제껏 본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마무시한 터널이 등장하였다.

 

‘아니 이런 깊고 깊은 산속에, 그것도 하늘과 맞닿을 듯한 이런 높은 산 속에 어찌 이런 터널이 있을까’하는 의아함을 갖고 터널을 달렸다. 한참을 달려도 끝이 없었다. 게다가 터널에 진입하여 한참을 달려도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었다.

 

터널의 내부에 설치된 전등은 촛불처럼 흐렸고, 중간중간 이빨 빠진 옥수처럼 불이 나간 등이 있었으며, 벽면은 너무도 오래되어 족히 백 년은 되어 보였다.

 

갑자기 공포가 밀려왔다. ‘아,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섰나. 이러다가 영원히 이 터널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잠시 후 내비게이션이 먹통이 되었다. GPS 수신이 끊긴 것이다.

 

이렇게 깊은 곳에서 나의 바이크가 고장이라도 난다면 어찌할 것인가. 국내라면 어찌해볼 수도 있겠지만 이곳은 바다 건너 일본인 데에다 그곳도 깊고 깊은 산중의 터널이 아니던가. 제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아니 될 텐데….

 

마침 반대편에서 차 한 대가 등장하였다. 얼마나 반갑고 감사한지 몰랐다. ‘아, 차가 다니는 곳이 맞는구나!’. 마음 같아서는 바이크를 세우고 감사의 말을 건네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나의 이런 반가운 마음을 아셨는지 가던 차가 잠시 후 멈추었다. 비상등을 켜고는 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리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서 있다. 그러니 오히려 더욱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나도 바이크를 멈추었다. 그러자 비상들을 켠 차량이 후진하여 나에게 다가왔다.

 

‘어, 저거 뭐지? 왜 가다 말고 나에게 오는 거야?’ 공포가 밀려들어 온몸이 얼어붙었다. 점점 나에게 다가오자 가위에 눌린 것처럼 정신이 아득하고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어~~~, 제발 가까이 오지 마라!’ 잠시 후 후진하던 차가 내 옆에 멈추어 서더니 창문이 내려졌다. 험상궂게 생긴 운전자가 말을 걸었다.

 

“도치라에 오이데데스까?(어디로 가십니까?)”

 

“나가노시니 이쿠 토추우데스.(나가노 시로 가는 길입니다.)”

 

“코노 미치와 토테모 키켄나 미치데스.(이 길은 매우 위험한 길입니다.)

 

소시테 유우가타니와 아메가 후루 소오데스.(그리고 저녁에는 비가 온다고 합니다.)

 

이소가즈니 이소이테쿠다사이.(지체하지 마시고 서둘러 가세요.)”

 

“오시에테쿠타삿테 혼토오니 아리가토오고자이마스.(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인다.

 

“쿠마모 한판니 수츠보츠스루노데 사리니 키오 츠케테쿠다사이.

 

(곰도 자주 출몰하니 더욱 조심하세요.)”

 

곰? 일본에서는 산속에서 곰이 자주 출몰한다는 말은 진작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말로만 듣던 그 곰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 이곳이라니 더욱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가는 일도 무서운데 곰까지 출현한다고 하니 그 두려움이 더욱 켜져 갔다.

 

‘아, 이 인간이 가던 길 가다 말고 굳이 멈춰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가뜩이나 사람을 잔뜩 떨게 하고는 그것도 모자라 이젠 곰까지 들먹이며 이렇게 겁을 주는구나.

 

인간을 이런 곳에서 만난 것이 고마운 일인지, 아니면 아니 만난 것만 못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네 놈이 아주 사람을 농락하는구나!’

 

 

▲ 먹구름과 비와 나  [ 사진 제공= 이정재 ]

 

 

잔뜩 긴장하며 터널을 달렸다. 한참을 달리고 또 달리니 드디어 터널의 출구가 보였다. 얼마나 반갑고, 감사하던지…. 그런데 터널을 빠져나오니 그분의 말씀대로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깔려있었다.

 

아마도 한두 시간 안에 비를 쏟아낼 기세였다. ‘아, 그분의 그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었구나!’

 

그런데 터널을 얼마나 빠져나왔다고 또다시 터널이 등장하였다. 아, 또다시 저 터널을 지나가야 하나! 이번에는 또 어떤 놈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듣게 되려나.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가던 길을 아니 갈 수도 없고, 되돌아갈 수도 없으니 뚫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마음을 굳게 먹고 터널의 입구를 향해 내달렸다.

 

이 터널도 좀 전의 그 터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흐릿한 전등불에 낡고 헤진 벽면이며 터널 내에서 울려 퍼지는 짐승 같은 굉음이며…. 더하면 더 했지 더 나은 게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좀 전의 터널보다는 그래도 통행하는 반대편의 차량이 간혹 등장하였고, 좀 전처럼 차량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다행히 별다른 일 없이 무사히 두 번째 터널을 빠져나왔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날은 어두워져 있었고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모여 얼마 후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일은 나가노 시에 가까워지며 여러 마을과 적지 않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던 점이다. 깊은 산이지만 달리는 길가에는 제법 큰 마을들이 군데군데 이어져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깊은 산골 오지 마을에도 ‘할리 데이비드슨’의 바이크 매장을 발견할 수 있었던 사실이다. ‘혹여라도 나의 바이크에 이상이 생기면 이곳을 이용하면 되겠다.’ 는 안도감이 들었다. 비를 맞으며 나가노역 인근의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 나가노 시의 게스트하우스 'Pise' [ 사진 제공=이정재 ]



오늘은 ‘Pise'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잡았다. 나가노 시에 자리 잡은 이 게스트하우스는 값도 저렴하고 여행객들의 평도 좋아 인터넷을 통해 예약하여 둔 상태였다.

 

어둠이 짙게 깔린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숙소의 간판을 보니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원시림 같은 깊은 산속과 어마무시한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안도감이 들며 몸도 마음도 지치고 피곤하였다.

 

 

▲ 나가노시 게스트하우스 내부의 앤틱한 분위기 [ 사진 제공=이정재 ]

 

 

숙소 앞 도롯가에 나의 바이크 주차하고 짐을 챙겨 들어갔다. 숙소의 밖도 그렇지만 안은 더욱 클래식하고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숙소의 카운터에서는 젊고 아리따운 아가씨가 보름달처럼 밝은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런 깊은 산중에 어찌 이리도 아리따운 여자가 살고 있을꼬.’ 깊은 산속에 홀로 피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한 떨기 백합화처럼 희고 고운 젊은 여자였다.

 

배가 고팠다. 먼저 저녁 식사 메뉴를 주문하고는 짐을 들고 배정된 방을 안내받았다.

개의 게스트하우스가 그렇듯 방은 비좁고 어두웠다.

 

 

▲ 좁고 어두운 나가노시 게스트하우스의 침실 [ 사진 제공= 이정재]



미로 같은 통로의 양쪽으로 커튼으로 가림막을 한 칸막이 방이었다. 짐을 놓고 누우면 더 이상의 공간이 없는, 마치 나무상자 속의 그런 방이었다. 죽음 체험을 위한 관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 이곳이 그런 곳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였다.

 

 

▲ 나가노 시에서의 저녁식사 [사진 제공= 이정재 ]



대충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저녁 식사를 하였다. 이 게스트하우스는 여행객들을 위해 식사와 술을 함께 팔고 있었는데 그 맛이 참으로 일품이었다.

 

저녁 식사를 아직 하지 않았다는 종업원 아가씨의 몫까지 주문하여 함께 식사하고 술을 마셨다. 주문한 스테이크를 먹고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그만 잠이 들었다. 많이 피곤했는가 보다.

 

 

▲ 꿈 속같은 저녁을 보낸 나가노시 게스트하우스에서 [ 사진 제공= 이정재]



그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어느새 침실에 누워있었다. 어제 저녁 식사와 술을 마신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침실로 와서 잠이 들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혹시 이 아가씨가 술에다 뭘 탄 건 아닐까……. 그리고는 곯아떨어진 나를 어떻게 한 건 아닐까……. 체구도 작고 힘도 없어 보이는데 설마 저런 몸으로 나를 둘러업고서는…….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어찌하겠는가.’ 다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잠에서 깬 아침 내내 참으로 궁금하기 짝이 없었지만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는 것으로 하고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험난한 하루의 여정을 용감하게 헤쳐 나간 나에게 나가노의 신께서 주신 ‘비밀의 선물’이라 생각하련다.



[이정재 박사 프로필]

이정재 박사는 성산효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청소년전공2019년 문학 시선’ 에 상사화아리다’ 외 4편으로 신인문학상 수상과 시인으로 등단하였고같은 해 봄 샘터 문학에 아내의 졸업 외 1편이 당선되어 신인문학상 수상과 수필가로 등단했다.현재 인천지역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강화도 교동도의 섬마을 학교에서 겪었던 일들을 소재로 한 소설을 집필 중이다. 2021년 학생들의 글을 모아 우리 학급 온 책 읽기를 펴내었으며 책을 읽고 생각하며 글을 쓰는 활동이 학교 현장에서 실천되기를 꿈꾸고 있다저서로는 아리아자작나무 숲 시가 흐르다’(공저), ‘별을 보며 점을 치다.’(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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