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와 바이칼호수 [40회]
하바롭스크와 성모승천사원 / 오수열 교수
위드타임즈 기사입력  2021/11/0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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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극동지역의 행정중심도시이자 군사도시로 아무르강 연안에 위치한 인구 60만의 아름다운 도시 하바롭스크는 원래는 중국의 영토였다.

 

아무르강은 중국어로는 흑룡강(黑龍江)으로 불리우며 따라서 지형상으로는 같은 강(江)인데, 러시아 지역 내의 유역은 아무르강(江)으로 중국 지역내의 유역은 흑룡강으로 불리운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청(淸)이 서양제국의 침략지로 전락하면서 1858년 청나라와 러시아 간에 체결된 아이훈조약의 결과 헤이롱강(黑龍江)의 왼쪽은 러시아 영토가 되었고, 우수리강 동쪽은 청나라와 러시아의 공동 관리로 되었는데,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 지역마저 러시아의 영유로 귀속되게 되었다.

 

 

▲ 하바롭스크의 레닌광장에서 [사진 제공=오수열]

 

러시아가 혁명의 격변 속에서 적군(赤軍)과 백군(白軍) 간의 내전이 전개되던 1918년에는 반동적(反動的) 백군의 요청에 의해 일본군에 점령된 적도 있는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이 이곳 하바롭스크이다.

 

자세한 설명을 듣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1921년 6월 알렉세예포스크(현재의 스바보드니)에서 우리 독립군이 믿고 의지했던 볼세비키혁명軍에 의해 포위ㆍ사살된 흑하사변(일명 자유시참변)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당시 연해주에 주둔하고 있던 日本軍은 러시아 연해주에 주둔한 우리 독립군의 해체를 볼세비키 공산당정부에 강력하게 요구했고, 日本과의 협상에 의해 日本軍을 철수시키고자 했던 볼세비키공산당정부 간의 이해관계가 합치되어 일어난 사변인 것이다.

 

하바롭스크역에 도착하자 마중나온 가이드가 " 비좁은 열차 속에서 고생들 하셨다."면서 “우선 목욕탕에 가서 씻고 나오시라.”고 하니 그말이 그토록 고마울 수가 없었다. 씻지도 않은 채 식당으로 안내했다면 무슨 밥맛이 있었겠는가.

 

 

▲ 하바롭스크의 향토박물관에서 [사진 제공=오수열]

 

하바롭스크를 찾는 여행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연해주 지역에서 제일 큰 향토 박물관이라고 한다.

 

이곳을 둘러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이 지역의 원래 주인이 ‘아시안’들이란 것과 우리 민족과도 혈통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과학기술에 눈을 떠야할 때, 눈 감았던 것이 후대에는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에 그저 멍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청(淸)으로부터는 이처럼 넓은 땅을 빼앗고, 미국에게는 알라스카를 팔아먹은 때가 제정(帝政) 러시아 말기(末期)이고, 그 장본인이 바로 니콜라스 2세가 아닌가.

 

정치에 보다는 황후를 비롯한 자녀등 가족에게 애착이 많았고, 문학을 비롯한 예술에 관심이 컸던 그가 황제가 된 것이 러시아에는 불행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쓸모가 없어 보인 알라스카를 팔아 먹었던 것이다.

 

그때 돈으로 720만 달러였다고 하니 얼마나 지난 후부터 러시아 사람들이 통탄을 금치 못했다는 것이 십분 이해된다.

 

▲ 극동지방을 발견한 탐험가 하바롭스키 동상 [사진 제공=오수열]


 박물관을 나서니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이곳을 발견한 러시아의 탐험가 하바롭스키 동상이 있어 잠시 들러본 후 콤소몰광장에 위치한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는 ‘성모승천사원’을 찾았다.

 

 

▲ 성모승천사원에서 [사진 제공=오수열]

 

선명한 파랑색과 황금색 지붕을 가진 색채감의 조화가 유난히 뛰어난 이 성당은 1886년 세워질 때는 ‘우스펜스키사원’이라고 불렀다. 

 

1937년 스탈린 정부 때 종교불인정 방침에 따라 철거되었다가 소비에트연방이 러시아공화국으로 바뀐 후인 2002년 시민들의 여망으로 그 자리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1886년이면 중국에서는 아편전쟁이 발발한지 20여년 밖에 되지 않는 때로 이홍장(李鴻章)이 서양제국의 침략에 맞서 청조(淸朝)를 지켜내기 위해 무던히 애쓰던 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개화(開和)가 시작되던 때로 육영공원(育英公院)이 세워지고 이화학당(梨花學堂)이 설립된 시기인데 변방의 조그마한 도시인 이곳에 이처럼 아름다운 사원을 세웠다니 러시아인들의 예술성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반드시 들리는 곳 가운데 하나라고 하니, 아름다움에 취한 나의 감동에 확신을 더해 주었다.

 

▲ 하바롭스프스크 시장 과일가게의 모습 [ 사진 제공=오수열]

 

하바롭프스크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알혼섬에서의 만찬에서 먹을 ‘킹크랩’을 구입하기 위해 시장(市場)에 들르는 것이었다.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일 가운데 하나가 그 지역의 특산음식을 맛보는 것이라고 한다.

 

 

▲ 예쁘고 다양한 모자들이 진열되어 있는 가게  [사진 제공=오수열] 



신선하고 맛있는 과일을 사기 위해 시장을 찾은 사람들의 모습과 길가에 진열되어 있는 예쁜 모자의 모습은 한국 시장의 풍경과 비슷하다. 

 

사실 인천에서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부터 참가자들로부터 시베리아에 가면 킹크랩을 먹게 해달라는 주문이 없지 않았던 터이다.

 

공교롭게 알혼섬의 숙박시설에서는 간단한 식사밖에 제공되지 않는다고 하여 그곳에서의 만찬은 우리가 직접 준비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상인들 가운데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반가움을 표시하는 고려인 동포들이 없지 않아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그들이 스탈린의 고려인 대이주를 피해 이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인지 중앙아시아로 갔다가 소련이 해체된 후 다시 연해주로 되돌아온 사람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먼 이국의 시장에서 비록 매우 서툴기는 했지만 우리말을 들을 수 있었다는것 또한 특별한 경험임에는 틀림없는 일이었다.

 

 

 * 이 글은 오수열 교수의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볼 수도 있습니다. 

 

 

 

▲ 오수열 학장    

이 글을 쓴 오수열 교수는 조선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타이완국립정치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중국인민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했다조선대학교에서 사회과학대학장기획실장정책대학원장 등을 역임한 후 정년 퇴임하였으며 현재는 조선대학교 명예교수와 광주유학대학 학장, ()21세기남도포럼 이사장한국동북아학회 이사장 등을 맡아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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