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만 가우도(駕牛島) 해안길을 걷다(47회)
전라남도 강진 여행기 / 오수열 교수
위드타임즈 기사입력  2022/01/0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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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초(月初)가 되면 두 번째 토요일이 기다려진다. 남도요산회(南道樂山會) 회원들과 함께 가벼운 산행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3월엔 산행 대신 바닷 바람을 쐬며 해변길을 걷기로 했고, 그 행선지로는 강진만의 가우도로 정해졌다고 한다.

 

금요일인 13일엔 아침부터 분주하였다. 동사무소엘 들러 인감증명서와 주민등록 초본을 떼어 동구장학회와 조대설립기념사업회에 건네주어야 했고 오후에는 대전서 개최된 방위산업 관련 세미나에 사회를 맡는 등 하루 종일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땅거미가 짙게 드리워진 뒤에야 귀가할 수 있었으니, 다음날의 산행이 은근히 걱정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여느때 처럼 아내가 미처 일어나기도 전부터 등산가방 챙기기에 바쁜 나를 보며 개미 쳇바퀴 돌듯 틀에 박힌 일상(日常)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고자 하는 나를 발견한다.

 

 

▲ 가우도 해안길에서 [사진 제공= 오수열]



승차지점에 도착하니 삼삼오오 밝은 모습으로 회원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한달 만에 보는 얼굴들이다. 조규봉 회장이 마이크를 잡더니 오늘의 일정에 대해 설명한다.

 

오늘 하루를 위해 그가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느낄 수 있다. 저런 회장이 있기에 요산회가 무탈하게 8년을 유지해온 것이리라.

 

강진읍내의 중앙초등학교 앞에서 미리 마중 나온 문화해설사 한 분이 승차한다.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라 싶더니 그 또한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준다.

 

오래전 강진에 정책대학원 분원을 운영할 때 안면이 있었던 안종희씨이다. 문화해설사로 변신해 곱게 나이들어가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회원들의 모습  © 위드타임즈



10시쯤 대구면 저두리 해안가의 ‘출렁다리’ 앞에 도착하여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가우도는 강진군 대구면 저두리와 도암면 신기리 사이에 있는 작은 섬으로 ‘소의 멍에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쳐진 이름이라고 한다.

 

강진만의 여덟 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有人島)로 경주김씨를 중심으로 열네 가구가 살고 있단다.

 

가우도에는 두 개의 출렁다리가 있다. 지금 건너고 있는 것은 저두리와 가우도를 잇는 다리로 438m의 사장교이다. 바다 위의 다리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는 것은 매우 상쾌한 일이다.

 

 

▲ 강진만 가우도의 출렁다리를 걷다 [사진 제공= 오수열}

 

 

다리를 건너와 왼쪽 해안도로를 따라 걷기로 하였다. 바닷길을 정비하여 데크로 단장한 길을 걸으며 관광진흥을 위해 애쓰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그리 크지 않는 휴식 공간 위에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유명한 영랑(永朗) 김윤식(金允植) 시인이 의자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이른바 ‘영랑쉼터’이다.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 좌상과 함께 사진 찍기에 바쁘다.

 

 

▲ 김윤식 시인 의자 '영랑쉼터" [사진 제공=오수열]

 

 

어제까지만 하여도 찌푸린 날씨에 쌀쌀하기 그지없었는데 오늘은 완연한 봄 날씨이다. 산(山)을 뒤로 하고 남쪽 해안가를 걸으니 자연스레 등산복 지퍼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좋은 날씨에 좋은 경치로다. “다음엔 꼭 아내와 함께 이 길을 걸어야지…”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 앞에 또 하나의 다리가 나타난다. 가우도와 도암면 신기리를 연결하는 715.9m의 현수교이다. 이 섬을 일주하고 점심을 먹고서는 저 다리를 건너 백련사(白蓮寺)로 갈 것이라는 해설사 양반의 설명이다. 잘 정비된 데크길은 여기까지이고 이제부터는 흙길이다.

 

 

▲ 가우도 안내도 앞에서 기념 촬영 [사진 제공= 오수열]

 

 

눈앞에 마을이 나타난다. 이 섬의 유일한 마을인 것이다. 마을 초입(初入)에 들어서니 푸른 상록수들이 우거져 있고, 언덕빼기에 가옥들이 자리 잡고 있는가 하면, 한쪽에는 몇 채의 한옥 펜션들이 보기 좋게 들어서 있다. 대략 20-30만원이면 1박 할 수 있다고 하니, 한 가족이 놀러오는데 무리가 없을 듯하다.

 

마을 입구 우거진 나무그늘 밑에 거북형상의 화강암 조각상이 보였다 부근의 습기로 보아 우물터인 것이 분명했다. 예측대로 우물터였다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이다.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약 천년쯤 될것이라고 한다.) 타 지역에서 처음 입도(入島)한 고씨 일가(一家)가 식수 때문에 고심했는데, 꿈에 할머니가 나타나 “내일 아침 물이 들 때(밀물일 때) 바닷가에서 거북이 떼가 보일 것인즉, 그들이 멈추는 곳에 우물(井)을 파면 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며 사라졌다고 한다.

 

정말 그 다음 아침에 바닷가에 거북이 떼가 보였고 그들이 기어가다가 멈추는 곳이 지금의 나무 밑이었는데, 조그만 섬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물맛이 좋았고 수량(水量) 또한 많았다고 한다. 섬이 개발되면서 마을 앞에 관정을 판 뒤로 물이 줄어서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물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고 이러한 전설을 이곳에 남겨 놓아 스토리텔링(Storytelling)으로 만들어가는 지혜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러한 나의 뜻을 강진원 군수님에게 꼭 전해 달라는 당부를 문화해설사에게 남기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만 하였다.

 

 

▲ 거북형상의 화강암 조각상의 전설을 설명하고 있는 문화해설사 [사진 제공= 오수열]



마을 앞에 학교였음직한 건물과 운동장터가 보였다. 지나날 ‘가우분교’터라고 한다. 오래전에 강진에서 전업(電業)을 하던 김한진 사장이 별장터로 매입했다며 나에게 일박을 권하던 바로 그 학교터인 것이다. 사용한지 오래된 모양으로 황량하게 변한 모습에서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저러한 상념 속에 일행과 함께 걷고 즐기는 사이에 나의 배꼽시계는 점심때가 되었음을 신호한다. 바닷가에 둘러 앉아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기로 했는데, 언제 준비했는지 굴(石花) 캐 파는 마을 주민 집에서 연포탕이 배달되어 온다.

 

조규봉 회장의 배려인 것이다. 지역의 막걸리 두 병에 연포탕을 곁들이며 나의 건강을 기원하는 회원들의 건배에 뭉클한 감동이 져며 온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데 범부(凡夫)의 일생(一生)이 이만하면 족하지 아니한가!

 

백련사와 조선시대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 선생이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초당을  거쳐 우리 모두는 다음 달을 다짐하며 상광(上光)길 버스에 몸을 실었다.

 

 

▲ 유배생활을 했던 정약용 선생의 다산 초당 [사진 제공= 오수열] 

 

* 이 글은 오수열 교수의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볼 수도 있습니다. 

 

 

 

▲ 오수열 학장    

이 글을 쓴 오수열 교수는 조선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타이완국립정치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중국인민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했다조선대학교에서 사회과학대학장기획실장정책대학원장 등을 역임한 후 정년 퇴임하였으며 현재는 조선대학교 명예교수와 광주유학대학 학장, ()21세기남도포럼 이사장한국동북아학회 이사장 등을 맡아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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