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로 둘러보는 일본 견문록(26회)
일본에서 만난 태풍과의 사투(死鬪)
위드타임즈 기사입력  2022/01/2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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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텐바 시에서 오사카 가는 길

 

 

일본 고텐바 시(市)에서 반가운 고향 친구를 만나 하룻밤을 함께하였다. 함께 먹고 마시며 그간 살아온 일들과 어렸을 적에 함께 했던 추억들, 고향과 고향의 사람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밤늦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곁에 잠들었던 고향 친구는 없었다. 새벽 일찍 출근을 하였던 것이다. 낯선 다른 나라에 와서 시간에 쫓기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또 다시 가슴이 아리고 코끝이 찡하였다.

 

오늘은 코텐바 시(市)에서 출발하여 오사카시(市)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거리로는 약 445 km이고, 시간상 약 10시간 30분이 소요되는 매우 빡빡한 일정이다.

 

오사카 시(市)에는 또 다른 고향 친구가 살고 있었는데, 그 친구와 연락이 되어 오사카 시(市)에 있는 친구의 집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출발하기 전에 날씨를 확인하였다. 일본의 아래 지방으로부터 태풍이 몰려오고 있었고, 중간 경유지인 나고야 지방을 지날 때는 태풍을 만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출발하기 전날에 오사카에 사는 친구와 통화를 하였는데, 태풍이 올라오고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라며 안전 운행을 신신 당부했다.

 

빠듯한 일정에 태풍 소식까지 있어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하였다. 다행히 출발하는 고텐바 시(市)의 날씨는 괜찮았다. 전혀 비가 올 것 같지 않은 그런 날씨였다. ‘날이 이렇게 좋은데 설마 태풍이 오긴 하겠어!’ 그러나 이런 나의 안일한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크나큰 시련에 무참히 짓밟히게 된다.

 

한참을 달리니 하늘에서 먹구름이 보였다. 나의 바이크가 도로를 내달릴수록 하늘의 먹구름은 더 크고 짙어져 갔다. 그러다 드디어 암흑처럼 어두워지며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세찬 비를 쏟아내던지 물 폭탄과도 같았다. 마침 달리던 고속도로의 휴게소가 나와 그곳으로 들어갔다. 휴게소에는 나와 같이 비를 피해 온 바이크 라이더들과 바이크들로 가득했다.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젖은 몸을 말리며 비가 그치기만 기다렸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언제 비가 온 것인 양 비가 그쳤다. 다시 달렸다. 언제 비가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조금 달리니 해가 나기 시작했고, 한참을 더 달리니 비에 흠뻑 젖은 몸이 바싹 다 마를 지경이었다. ‘이제 비가 다 왔나 보다! 더는 비가 아니 오겠지!’

 

아뿔싸! 나의 이런 안도하는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잠시 후에 먹구름이 일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우르릉, 꽝꽝!”

 

‘지~~~럴~~~! 변덕도 땅 주인을 닮아가나! 누가 변덕 심한 왜놈의 땅이 아니랄까 봐 날씨가 죽 끓듯 하네!’

 

다음 휴게소가 나올 때까지 가던 길을 멈출 수도 없었다. 비를 쫄딱 맞고서야 휴게소에 진입하였다. 그리고는 종전과 같이 휴식을 취하며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비가 그쳤다. 다시 달렸다. 이젠 정말 다시는 비가 안 올 날씨 같았다. ‘아니, 이렇게 날씨가 맑고 뜨거운데 설마 비가 오려나…. 태풍이 오는 것이 맞기는 한 건가….’

 

일본은 결코 작은 섬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덕이 심하여 날씨가 죽 끓듯 하여도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시간의 바이크 이동 과정에서 ‘비를 퍼부었다가 다시 타들어 가는 해를 내었다’를 반복하는 이 일본의 하늘과 땅은 참으로 높고 광활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오늘 날씨의 승자를 결판이라도 내겠다는 듯 드디어 태풍이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빛은 사라지고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며 옅은 어둠과 함께 비바람을 몰고 태풍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정오를 조금 넘겼을 뿐인데 초저녁 어두운 밤 같은 하늘에 비바람이 들이치며 나의 바이크와 나의 몸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 하늘을 향해 뻗은 메이코추오 대교(출처:구글지도) ⓒ이정재 

 

 

아뿔싸! 비바람을 뚫고 가는데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바벨탑’과도 같은 형상을 가진 다리가 등장하였다. 다리의 상판은 하늘을 향하고 있는데 그 상판을 지탱해주는 교각의 기둥은 하늘에 맞닿은 듯 솟구쳐 있고, 마치 나는 하늘을 향해 올라가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아! 저곳을 건너가야 하나!’ 정말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돌아가는 길이 있다거나 멈추어 쉴만한 곳이 있다면 그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갈 수도, 멈추어 피할 곳도 없었다. 비바람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 암흑같은 일본  바다 위의 다리를 건너다(출처:구글지도) ⓒ이정재 



비는 얼마나 내리 퍼붓는지 눈앞이 보이지를 않을 지경이었고, 태풍의 바람도 얼마나 세던지 500 kg에 가까운 육중한 나의 바이크가 뒤뚱거리기 시작했다. 바이크 뒤에 실린 짐이 잘 있는지 궁금하였다.

 

확인 차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나의 헬멧의 버블 스크린이 “뚝‘하는 비명을 내지르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강풍에 떨어져 나간 것이었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내리치는 빗방울은 날카로운 송곳처럼 내 눈을 찔러댔다.

 

눈을 감을 수도 뜰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실눈을 뜨고 버티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을 때 비옷의 모자 끝에 덧대어진 투명 비닐을 내렸다. 그것도 손을 사용할 수 없어 머리를 순간적으로 흔들어야 하는 난이도 높은 기술을 발휘해야 했는데, 이런 고급진 기술 발휘를 잘못했다가는 시야를 놓쳐 고꾸라질 수도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실눈 뜨고 버티기와 비옷 모자 끝의 투명 비닐 보호막의 교차 방어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데 비는 더 쏟아지고 바람은 더 강해지기만 하였다.

 

 

▲ 일본 오사카 가는 길에서 태풍과의 사투를 벌이며 달리다 ⓒ 이정재



다리의 중간쯤을 갔을 때 다리 아래의 바닷물을 보았다. 순간 기절하는 줄 알았다. 시퍼렇다 못해 검푸르게 보이는 물살이 소용돌이를 치며 솟구쳤으며 스러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미친 황소 수천 마리들이 사람들을 향해 돌진하는 것처럼 다리 아래의 파도들은 길길이 날뛰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순식간에 먹어치우겠다는 듯한 기세였다.

 

‘아! 저기에 떨어지면 내 사랑하는 바이크를 다시 구할 수도 없는 것은 고사하고, 사체(死體)가 되어버린 나의 몸뚱이조차 발견되기 어렵겠구나! 아! 왜 굳이 바다 건너 이 먼 곳까지 와서 사서 고생이요, 죽을 일은 무엇인가!

 

국내에서 이런 험한 꼴을 당한다면 실종자 수색이나 장례를 치르는 일이 그나마 낫겠다마는 이곳은 남의 나라가 아닌가! 그것도 바다 위의 다리요, 태풍 치는 바다가 아닌가!’ 거센 바람에 자칫 잘못하면 ‘나 잡아먹겠다.’고 입 벌리고 있는 바다에 떨어질 판이었다. 

 

 

▲ 소용돌이 치는 다리 아래의 일본 바다 (출처: 구글지도)    ©이정재 

 

 

마침 다행히 옆을 지나가는 화물트럭을 만났다. 일본의 화물트럭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모두 탑차 형태였다. 외벽이 있어 그 옆으로 달리면 바람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옆을 지나가는 화물트럭의 측면을 파고들며 달렸다.

 

그러니 확실히 바람의 세기가 줄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가끔 옆을 달리는 화물트럭이 나를 추월하게 되었을 땐, 와류현상(渦流現想)으로 인해 나의 바이크가 더 휘청거리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나는 다시 화물트럭의 측면을 파고들며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태풍과의 사투(死鬪)를 벌이는 나의 모습을 화물트럭 기사께서 보셨는지 그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듯 하였고, 다소의 여유가 생겨 화물트럭의 커다란 백미러를 본 순간 ‘엄지 척’ 하고 있는 그의 손을 볼 수 있었다.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일본과 일본인을 미워하던 그간의 감정이 태풍에 날아가는 듯하였다. 곤경에 처한 사람은 누가 되었든 남의 도움과 선행에 무너지기 마련인가 보다.

 

그러나 조금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또 다른 고비가 찾아왔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고 하였던가.

 

바이크의 계기판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기름이 떨어진 것이었다. 사실 아침부터 상당한 시간을 달려왔는데에도 기름을 넣을 수 있는 휴게소가 흔하지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고속도로는 일종의 산업도로서 일반 고속도로와 달리 휴게소가 매우 드물었다.

 

'아! 빨리 휴게소가 나타나야 하는데….’

 

그러나 좀처럼 휴게소는 나타나질 않았다. 비는 내리 퍼붓고, 바람은 거세고, 다리 아래 바닷물은 더 미쳐 날뛰고, 기름은 떨어져가고…. ‘미치고 환장하겠다.’는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렇게 불안과 공포에 떨며 바다 위의 다리를 건너갔다. 그러나 잠시 후 또 다시 등장했다. 이 모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휴게소를 만날 수 있기를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했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바다 위의 다리를 지나 잠시 후 등장한 것은 그렇게 애타게 찾던 ‘휴게소’가 아닌 또 다른 ‘바다 위의 다리’였다.

 

“니미러ㄹ~~~!” 욕이 절로 나왔다.

 

‘누가 휴게소를 달라고 하였지 바다위의 다리를 달라고 하였나! 누구 잡아 죽일 작정이신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여기에서 멈출 수도 되돌릴 수도 없으니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더 있겠는가! 앞의 과정이 다시 반복되었다. 다만 계기판의 빨간 주유 등은 더욱 빠른 속도로 깜빡거리고 있는 듯하였다.

 

“기름 다 떨어져 가니 좋은 말로 할 때 얼른 기름 넣어주세요! 안 그러시면 여기서 서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라며 협박이라도 하는 듯하였다.

 

‘나두 그러고 싶다! 이놈아!’

 

존버! 버티면 끝이 있다고 하였던가!

 

그렇게 태풍과의 사투를 벌이던 중에 드디어 나타나셨다. 그렇게 애타게 찾던 ‘휴게소’를 알리는 이정표가 등장하였다.

 

얼마나 감사하고 또 다시 감사하던지. 눈물이 나고 콧물이 날 지경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바이크를 멈추고 하늘에 매달린 휴게소를 알리는 이정표를 날아올라 껴안아 주고 싶을 정도였다.

 

‘조금만 더 버티자. 조그만 더 가면 드디어 휴게소이다. 그나저나 설마 휴게소까지 가는 중에 기름이 바닥이 나서 나의 사랑하는 바이크가 서버리면 어쩌지….’

 

도중에 멈추어 서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휴게소를 향해 나아갔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바이크는 멈추지 않고 휴게소의 주유소까지 갔다. 아마도 나와 함께 사력(死力)을 다해 태풍과 싸우며 이곳까지 온 듯하다.

 

휴게소가 있는 이곳은 ‘나가시마 스파랜드’라는 곳으로 우리나라의 서해대교가 지나가는 ‘행담도’ 같은 섬에 위치해 있다. 이곳이 유명한 일본의 대표적인 ‘스파랜드’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게 눈에 들어올 여유가 없었다. 위험천만한 여러 고비를 다행스럽게 무사히 넘겼지만 앞으로 가야할 길이 멀었다.

 

 

▲ 일본의 대표적인 테마파크인 나가시마 스파랜드(출처: 구글지도) ⓒ이정재 

 


휴게소의 주유소로 곧장 찾아들어가 기름을 주유하기 위해 바이크를 멈추고는 뒷좌석의 짐을 확인하는 순간, 가슴을 쓸어내렸다. 단단히 묶어두었던 짐이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끈이 느슨해지며 짐이 흘러내리기 시작하였고, 조금만 더 갔더라면 짐도 잃고, 바이크도 잃고, 내 목숨도 잃을 뻔했다 생각하니 오싹한 느낌마저 들었다.

 

악천후를 뚫고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한 나의 사랑하는 바이크에게 큰 포상이라도 하듯 기름을 탈탈 털어가며 넣을 수 있는 만큼 가득 채워 넣었다. 그리고 다시는 너와 헤어지거나 너를 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이라도 하듯 여행 짐을 단단히 묶고 또 묶었다.

 

그리고는 이곳 휴게소에서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며 굶주림도 잊은 채 역경을 헤쳐 나온 나의 뱃속을 맛난 음식으로 채우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비바람이 잦아지기를 기다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다소 비바람이 잦아들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태풍 권에 있는 이곳에 비바람이 멈출 것 같지는 않았다. 저녁 때 목적지인 오사카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여전히 태풍이 울부짖는 세상 속으로 나와 나의 사랑하는 바이크는 주저 없이 뛰어들었다.

 

 

‘하늘이시여! 부디 저희들을 굽어 살피어 주옵소서! 내가 당신을 경외하나이다.’

 

 

 ‘하늘이시여! 부디 저희들을 굽어 살피어 주옵소서! [ 본문 중에서]



 

 

▲ 이정재 박사

[ 이정재 박사 프로필]

이정재 박사는 성산효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청소년전공2019년 문학 시선’ 에 상사화아리다’ 외 4편으로 신인문학상 수상과 시인으로 등단하였고같은 해 봄 샘터 문학에 아내의 졸업 외 1편이 당선되어 신인문학상 수상과 수필가로 등단했다.현재 인천지역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강화도 교동도의 섬마을 학교에서 겪었던 일들을 소재로 한 소설을 집필 중이다. 2021년 학생들의 글을 모아 우리 학급 온 책 읽기를 펴내었으며 책을 읽고 생각하며 글을 쓰는 활동이 학교 현장에서 실천되기를 꿈꾸고 있다저서로는 아리아자작나무 숲 시가 흐르다’(공저), ‘별을 보며 점을 치다.’(공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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