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국가 인도의 고뇌와 잠재력 I (9회)
시인 타골과 델리... 오수열 교수
위드타임즈 기사입력  2021/04/0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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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골을 생각하면서  ⓒ 오수열 

 


2일째 여정은 인도박물관을 거쳐 인도가 자랑하는 시인(詩人) 타골(Tagore) 생가와 라빈드라나스대학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1861년 캘커타의 저명한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대학을 다닌 타골은 귀국 후 농업공동체와 학교를 설립·운영하기도 했으나 그의 이름은 문학에서 빛을 발했다.

 

가족의 연이은 사망과 공동체 운영의 어려움 속에서 쓴 기탄잘리(獻詩)로 191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이다.

 

마치 시골중학교의 정취가 물씬 풍긴 타골의 생가와 문학관은 매우 소박하면서 기품이 있었고, 캘커타에서는 가장 기억에 남을 곳이 아닐까 생각될 만큼 포근한 문학적 친근감을 안겨주었다.

 

그의 사진 밑에 놓여진 의자에서는 이곳에서 기념촬영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 우리의 독립 운동가들의 요청에 ‘동방의 불빛’이라는 즉석시를 써주었다는 그에게서 같은 피압박민족으로서의 동질감이 연결되는 것을 느낀 가운데 우리 일행은 인도의 북부에 놓인 수도 델리를 향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올드델리(Old Delhi)의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시민들 ⓒ 오수열

 


델리가 있는 북부지방은 히말라야산맥의 남쪽으로 네팔 및 파키스탄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으로 예로부터 힌두 문화가 번영하였고 13세기 이후에는 이슬람 문화가 침투하여 인도의 정치․문화의 중심으로 성장하였고 지금도 곳곳에 이슬람 문화가 산재하고 있다.

 

이곳의 중심은 델리인 바, 델리는 무굴왕조의 샤자한이 1638년 성채를 쌓고 도시를 건설하면서부터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1911년 영국총독부가 캘커타로부터 이곳으로 옮겨오게 됨에 따라 비약적인 발전을 보게 되었다.

 

오늘날 인도의 수도로 되어있는 뉴델리(New Delhi)는 1911년 영국왕 조오지 5세의 접견식이 델리 북부 교외에서 개최된 것을 계기로 수도를 캘커타에서 델리로 옮김과 동시에 신도시를 건설하라는 명령이 당시의 인디아 총독 하딩에게 내려져 델리의 남쪽에 본격적인 계획 도시 건설공사가 착수되고 1927년 완공됨에 따라 붙여진 이름으로서 델리와 뉴델리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어떠한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 뉴델리 중앙에 위치한 독립기념탑 ⓒ 오수열 



다만 뉴델리가 서구적이고 근대적인 계획도시로서 넓고 쭉 뻗은 도로망과 곳곳에 산재한 공원 등으로 말미암아 문화적 삶이 있는 곳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라면 바로 곁에 있는 델리는 무질서한 거리와 넘치는 인파, 불결한 주거환경 등으로, 오늘날 인도가 안고 있는 빈부의 격차를 뉴델리(New Delhi)와 올드델리(Old Delhi) 사이에서 극명하게 느껴 볼 수 있을 뿐이다.

 

 

주 인도 한국대사관에서 조징교수와 함께 ⓒ  오수열

 


3·4일째의 뉴델리에서의 여정은 분망함의 연속이었다. 우선 정부의 주선으로 마련된 교수단의 여정인만큼 주재국 대사관을 방문하는 것이 관례일 것이다.

 

대사관에 도착하여 대사님을 비롯한 공관원들의 영접을 받고 오찬을 함께 했는데 이곳에서 뜻밖에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안식년을 이용하여 이곳 델리대학교에 방문학자로 와 있는 의과대학 생물학교실의 조징 교수님이 방문자 명단에서 나를 발견하고 자리를 함께한 것이다.

 

또 한가지는 대사님과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나의 명찰을 보고서는 “조선대학교에서 오셨군요. 저도 광고(光高) 출신입니다.”며 매우 반가워하는 것이었다.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는 반갑다.’는 말처럼 이국만리에서 동향인을 만난 감회는 남다른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이 글은  오수열교수의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오수열 학장     
* 이 글을 쓴 오수열 교수는 조선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타이완국립정치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중국인민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했다. 조선대학교에서 사회과학대학장, 기획실장, 정책대학원장 등을 역임한 후 정년 퇴임하였으며 현재는 조선대학교 명예교수와 광주유학대학 학장, ()21세기남도포럼 이사장, 한국동북아학회 이사장 등을 맡아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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