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와 스승 I (2회)
다양한 형태의 잡지는 나의 스승 / 박하경 수필가
위드타임즈 기사입력  2024/02/0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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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신록마저도 무더위에 지쳐 보이는 기색이 역력하다. 

팔월을 끓여대는 장하(長夏)가 분명하다.

 

기상변화로 인해 산천의 나무 종류가 침엽수에서 활엽수로 바뀐 지 오래고 장마철이란 명칭이 우기라는 명칭으로 바뀐단다. 온대기후에서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지구촌에는 수많은 종류의 동물과 식물이 살지만 영장(靈長)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들은 자만과 오만으로 황금빛 미래를 꿈꾸며 환경파괴를 개발이란 미명하에 일삼아왔다.

 

이제는 그 결과로 나타나는 재앙들과 맞서 싸워야하는 단계에 우리는 서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누구나의 인생은 누구나가 주인공이며 또한 다른 이들의 조연이 되어 엮임 줄이 되어 살아간다. 이렇게 살아내는 과정 속에서 주춧돌이 되어주거나 기둥이 되어주는 그 무엇들이 있게 마련이다.

 

거기엔 스승이 있고 부모가 있고 친구가 있고 마음을 깊이 나누는 지인들이 있어 나름대로 인생의 지지대 역할을 해주었을 것이다.

 

내게도 어린 시절은 어린 시절대로 학창시절엔 학창시절대로, 충만한 여유와 넉넉한 인내를 가르쳐 준 특별한 스승과 가르침의 동반이 있어왔다.

 

스승에 있어서 직접적인 스승도 있으나 간접적인 스승의 역할을 해 주는 경우도 많다. 내게도 이러한 특별한 스승이 있으니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동반자가 되어 가르침의 손을 잡아준 다양한 형태의 잡지들이었다.

 

나와 일곱 살 차이가 나는 큰 언니는 일찌거니 서울 대처로 나가 돈을 벌면서 독학을 했다. 큰 언니는 보성여중에 2등으로 합격했지만, 남아선호라는 일관된 사상으로 평생을 사셨던 아버지는 1등을 못했기 때문에 중학교에 보낼 수 없다는 어이없는 억지를 부리시며 큰딸을 서울로 돈벌이를 내보내셨다.

 

오직 아들만 교육하면 된다는 굳은 의지로 큰딸을 대처로 내보내셨던 것이다.

 

큰언니는 일하면서 학교에 다니는 와중에도 동생들을 잊지 않고 그 시절 초등학생들에게 최고 인기를 누렸던 소년중앙과 별책 부록하며, 위인전과 온갖 동화책을 커다란 박스에 가득가득 채워 보내 주었다.

 

큰언니는 해마다 박스를 여럿 꾸려 보냈는데, 어느 해엔 아버지가 그중 제일 큰 책 박스를 풀지도 않은 채로 고물 장수에게서 라면으로 바꾸시는 사고를 치셨다.

 

그 바람에 엄마는 책을 찾으려고 십리를 걸어 예당역 화물 창고를 다 뒤졌다고 하셨다. 책 박스가 광주로 실려 갔다는 말을 듣고 두 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광주역까지 가서 화물을 뒤졌지만, 결국 헛걸음을 하시고 돌아오신 웃지 못할 우리 가족 책 사랑에 얽힌 에피소드가 지금도 유쾌한 웃음을 웃게 터트리게 만든다.

 

큰 언니가 보낸 책 박스엔 비록 철 지난 잡지가 가득 들어 있었지만 시골 소녀에겐 사탕보다 달콤했고 하늘을 나는 제트기처럼 설레게 했다.

 

그 당시 초등학생 월간 잡지였던 소년중앙은 형제들 사이에 먼저 보려고 쟁탈전을 벌일 만큼이나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다.

 

소년 중앙에 실렸던 연재만화 속 인물들은 지금까지도 눈빛마저 생생히 살아 움직이며 때론 나를 움찔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박스에 가득했던 그 책들은 청소년기의 나를 문학소녀로 이름을 바꾸며 각종 문학 서적을 탐독할 수 있는 모태가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서자 나는 유난히 에세이가 좋았다.

 

생활 속에서 생겨진 일들과, 생겨나는 일들을 담담히 적어 놓은 에세이는 감동과 헤아릴 수 없는 에너지를 내게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어령 님의 에세이는 더욱 그러했다.

 

그분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에세이는 한국인으로 태어남과 나고 자람을 생각하게 되었고, 한국인으로서의 자아발전과 자긍심을 기르며 살게 된 모태가 되었다.

 

여러 에세이들을 기억하지만 작은 문고판으로 나왔던 에세이 중에 ‘희랍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짧은 에세이는 그여이 나를 지중해 그 아름다운 곳을 밟고 서게 했다.

 

중학 시절 그분의 에세이를 달달 외우고 다닐 정도였으니 그분은 내 인생을 잘 다지고 받쳐 지지대 역할을 해 주신 큰 스승이신 격이다.

 

평생 말간 걸레로 식구들이 앉고 눕고 잘 자리를 생각하며 방을 훔치는 어미요, 아내 같은 마음으로 평생 그분의 에세이를 사랑하면서 닳고 닳을 만큼이나 그 책들을 소중히 아끼며 오랜 세월을 간직했다.

 

이처럼 여러 형태의 책들은 때마다 시마다 내 인생에 있어 동반자요 손을 잡아 이끌어준 곧은 스승이라 할 수 있다.

 

초등시절에는 큰언니가 보내 준 잡지들이 생각의 깊이와 마음의 넓이와 가슴의 크기를 길렀다면, 학창시절엔 리더스 다이제스트 한국판과 샘터가 있었으며 각종 문학 문고판이 있었다.

 

기차를 탔던 친구들이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고 건네주면 책을 들고 등하교 십리 길에 맛나게 읽을 수 있었다.

 

종종 기차를 타곤 했었는데 기차 안에서 구입해서 읽을 수 있었던 잡지들은, 좁은 세상에서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도록 창의 역할을 해 주었다.

 

세월이 훌쩍 나를 이십 대로 데려다 놓았고 이십 대 초반에 일찍 결혼했다. 대학진학을 포기하지 못하고 책을 끼고 살았던 내게 남편은 대학을 보내 주겠다는 달콤한 제의를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순조로운 결혼 생활이었지만 태어난 큰아이가 생후 5개월부터 알 수 없는 경기를 시작하면서 행복의 리듬은 깨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연년생으로 태어난 둘째를 못난 어미의 부주의로 인해 신생아 황달로 지진아로 만들 뻔했던 일이었다.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큰아이의 경기는 큰 병원에서도 원인이 없다는 결론만 되풀이되었고 아이는 속수무책 경기를 계속했다.

 

심할 때는 하루에 서너 번을 연속했기에 아이에게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러나 둘째 아이를 황달에 노출하고 말았던 게으름의 누를 큰아이 탓으로만 돌리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작은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쯤에나 지능이 정상으로 돌아올 거란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기가 막히고 황당했지만,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정말이지 죽고만 싶었다.

 

아이가 아이를 낳았다며 걱정을 일삼으시는 친정어머니 걱정만치나, 내 걱정과 염려는 내 몸을 피폐하도록 마르게 했고 정신을 파먹는 벌레가 내 몸 가득 우글거리는 것만 같았다.

 

마르는 몸뚱이는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뼈를 쇠하게 했고 심장을 공격하더니 종내는 숨을 쉴 수조차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걱정과 염려에 내 몸도 마음도 정신도 내어 줄 수 없었다.

 

자식은 자식 대로 지켜 살게 해 주어야 했고 남편은 남편대로 내조 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내가 살아야 했다.

 

내가 살아야만 다 살릴 수 있다는 마음을 다잡으면서 살아낼 궁리를 시작했다.

 

자면서도 경기를 하는 큰아이를 지키기 위해 아이를 무릎에 안고 앉아서 잠을 자다시피 하면서, 그 시간이 아까워 책을 잡고 날을 지새우며 작은 아이를 어떻게 잘 키워야 하나? 궁리에 몰두했다. 궁리 끝에 만화를 선택했다.

 

아이와 함께 볼만한 만화를 빌려 볼 수 있으면 모조리 빌렸고 살 수 있으면 무조건 샀다. 아이와 뒹굴며 만화로 말을 가르치고 상상력을 가르쳤다. 꿈을 가르쳤다.

 

이렇게 만화를 선택해서 아이의 지능을 일깨울 지혜를 얻음은 역시 초등학교 시절, 서울에서 먼 고향 시골에 큰 언니가 보내 주었던 소년중앙에 실렸던 만화의 감동을 잊지 못한 탓이었다.

 

그러나 만화를 선택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중학 시절 국어 선생님께선 수업시간에 만화를 보다 걸리는 학생들 만화를 빼앗아다 글을 알지 못한 학생들 교재로 사용하시는 걸 봤기 때문이다. 글을 모르고 중학교에 오는 학생이 꽤 되었는데 만화를 보면서 쉽게 글을 깨치는 것을 보면서 놀라웠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만화로 둘째 아이를 성공적으로 잘 키워낼 수 있었다.

 

작은 녀석은 만화 덕분에 최고의 애니메이션 시대를 구가한다며 지금도 능청스럽게 만화를 보며 농을 늘어놓곤 한다.

 

남편은 책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가정을 방문해 책을 파는 분들을 보기만 하면 집으로 보내 주었기에 집은 책으로 넘쳐났다.

 

큰아이를 무릎에 뉘어 잠재우는 긴 밤시간은 각종 문학 서적으로 마음을 채워 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7년여 세월이 흐르면서 큰아이의 경기가 7년 만에 거짓말처럼 그쳤다.

 

작은 아이도 엄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 자라 주더니 또래들보다는 약간 늦은 감이 있었지만, 초등학교 5학년쯤 정상으로 돌아오겠다던 아이는 3학년이 되자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보통 아이로 돌아와 주었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지금도 만화를 대하면 그때 일들이 회상되면서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그리고 여유로운 웃음과 함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본문이미지▲ 박하경 시인  ©위드타임즈

[秀重 박하경 시인 프로필] 

출생: 전남 보성. 시인, 수필가. 소설가 

한국문인협회,한국소설가협회,경기광주문인협회 회원, 현대문학사조 부회장, 지필문학 이사, 미당문학 이사, 현대문학사조 편집위원. 종자와 시인 박물관 자문위원. 제2회 잡지 수기 대상 문광부장관상 ,경기광주예술공로상 등 수상, 송운당하경서재(유튜브 운영) 시집 : <꽃굿><헛소리 같지 않은 뻘소리라고 누가 그래?> 외 동인지 다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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