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와 스승 II (3회)
나의 동반자와 스승인 '에세이' / 박하경 시인
위드타임즈 기사입력  2024/02/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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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의 한숨도 잠시 그야말로 내 인생에 있어 다시 한 번의 끔찍한 대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뜻밖에도 남편의 사업이 기우뚱거리기 시작하더니 부도가 났기 때문이었다. 1993년 이후 금융실명제가 전격적으로 공포되면서 공사대금으로 받아 두었던 어음과 가계수표가 순식간에 종이 쪼가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거래처들이 부도로 쓰러지면서 우리 역시 연쇄 부도가 나면서 착실하게 모아 두었던 재산은 바닥을 보았다. 또다시 어려운 현실에서 가정과 아이들을 지키려면 나 자신에게 에너지가 필요했다. 무엇인가 획기적인 결단이 필요한 시기였다.

 

궁리하던 차에 서점에 들러 문학 잡지 서너 권을 골라 와서 (기억으론 네 권이었던 같다) 정기구독으로 신청했다.

 

그중에 내가 좋아했던 에세이가 있었는데 1987년 발간을 시작한 월간 에세이였다.

 

어느 화가의 그림인지는 몰라도 화려한 색채의 그림 표지가 눈에 띄었고 장르별로 에세이가 엮여 있는 게 두껍지 않고 얄팍한 책이었다. 그 후 월간 에세이는 내 인생의 중년기를 감성과 굳건한 에너지원의 반석으로 이끌어 준 책이 되었다.

 

나는 특정한 월간 잡지를 광고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암담했고 힘에 부쳤고 힘에 겨웠던 시절에 문학 잡지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를, 나를 살려내는 에너지의 샘물이 되어주었는가를 담담히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저 내가 에세이를 좋아했기에 탁월한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고 고백하고 싶은 것이다.

 

월간 에세이는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내고 있으며, 각인의 자리에서 성실한 버팀목으로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었다. 월간 에세이는 그 후 몇 년간에 걸쳐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었다.

 

특히 장르별로 실린 에세이 중에 서간 에세이 코너는, 차가운 현실로 식어버리기 일쑤였던 나의 감성을 따뜻하게 만들어서 어둡고 차가운 현실을 따스하게 덥혀 주는 화로 역할을 해 주었다.

 

그 시절 내가 가졌던 생각은 우체국만이 사람과 사람을 따뜻하게 소통하게 만드는 기별의 기능을 담당한다고 생각했었다.

 

우체국을 통하지 않고도 대중매체를 통하여, 사람 간 혹은 사람과 교감을 나누었던 어떤 사물 간에 편지를 통하여 여러 사람을 감동 시킬 수 있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서간 에세이를 쓴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소설가 수필가 화가 여행가 운동선수 시인 칼럼니스트 교수 의사 교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서간 에세이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편지를 쓰는 대상을 향하여 전하는 메시지의 힘이 각각 달랐다.

 

스승에게, 부모에게, 자식에게, 조카에게, 삼십 년 만에 쓴다는 답장으로, 이미 삶을 떠난 지인에게, 자신들의 삶 속에서 반가운 기별을 띄울 만큼 각별한 연을 지닌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이 아닌 여행을 다녀왔던 작은 섬에게 쓴 편지도 썼거나 소설에게 라는 제목으로 쓴 편지거나, 계수나무에게 쓴 편지들은 웃음과 함께 무언지 모를 목 뜨거움을 일깨워 나를 더욱 감동시켰다.

 

‘아하! 마음을 교감하는 것이 사람을 넘어서서 우주 삼라만상 그 어느 것 하고도 마음을 교류할 수 있는 것이구나’ 라는 것을 이와 같은 서간 에세이를 통하여 배운 것이다.

 

각박한 현실로 인해 식어버린 가슴은 온기를 되찾았고 힘을 잃어 비틀거렸던 다리에도 피돌기가 되었다.

 

서간 에세이들은 지금까지도 가슴의 스승이 되어 오늘날 내가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잊혀지지 않는 감동이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1994년도 10월호였을까?

 

이미례 영화감독이 썼던 관매도라는 섬을 다녀와서 관매도 섬에게 쓴 편지이다.

 

“이른 새벽 바닷모래 위에 숨 쉰 자국을 보고 파보면 영락없이 대합이 나오며 노다지를 캐는 것 같아 마음은 한없이 충만해집니다.

 

일 년 내내 찾는 사람이 오천 명이 안 되는 이곳에서 그대로 갇혀버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벼랑 위를 아슬아슬하게 줄지어 걸어가는 흑염소의 곡예를 보면 섬의 단조로움 또한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래도 빼어난 자태와 사람 사는 정은 여전히 남아있을 줄 믿습니다.”

 

관매도란 섬을 다녀와 그 섬을 그리워하며 섬에게 쓴 편지의 끝부분이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싸우듯 이겨내려 안간힘을 쓰며 살아내던 내게 이 글은 자연을 향한 여유를 갖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섬을 그리며 일상을 넘어선 자연과의 교감을 누리게 해 준 전환점을 선물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도 누군지 모르지만 날 지켜보며 힘을 보태주고, 무엇인가 좋은 것으로 주고 싶었던 간절한 바램을 가진 어떤 이에게서 보내온 ‘좋은 생각’이라는 얇고 작은 책이 월간 에세이와 함께 내 곁에 동반자로 있었다.

 

출판사에 전화해서 정기구독을 신청해준 사람을 알아봤지만, 익명으로 해달라면서 3년 구독료를 냈다고만 알려주었다.

 

어느 날 배달되어 온 좋은 생각은 온통 좋은 생각만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책 같았다. 구독권을 끊어준 복 받으실 어떤 분 덕분에 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애환과 웃음과 합하여 함께 참여 할 수 있는 유익한 나날들이 되었다.

 

얇고 가벼워서 어디든지 가지고 다닐 수 있어 좋았고, 값이 저렴해서 지인들에게 선물해 주기 쉬워서 여기저기 마음 닿는 지인들에게 보내 주었던 책이 ‘좋은 생각’이었다. 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작게라도 갚으리라 생각하며 구독권을 끊어 ‘좋은 생각’을 보내 주었던 친구는 아직도 내게 치하를 아끼지 않는다.

 

“참 어려웠던 시절 네가 보내 주었던 ‘좋은 생각’이 살아내는 동안 큰 보탬이 되었노라”라고.

 

내가 아무리 많은 책을 지인들에게 나누었다 할지라도 내가 받아 누린 것에 비하면 어찌 크다 할 수 있을까. 내가 처해 있는 환경이 어둠으로 뒤덮였을 때, 정신을 놓고 비틀거림으로 삶의 각도를 빗나가 건강을 탕진하고 시간을 축낼 수밖에 없었을 때, 그 암담했던 시간 속에서 빛으로 내 손을 잡아주고 이끌어주었던 좋은 잡지들이 있었기에 정신을 맑히고 가슴을 덥히고 걸음을 단단히 할 수 있었다.

 

하여 나는 삶을 사는 동안 나와 인연이 되어 곁에 있었던 잡지들이 내 인생의 동반자이며 스승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고 싶다.

 

지금껏 내 영혼을 살찌우고 반짝이는 보석의 햇살처럼 내 정신이 순수로 빛날 수 있게 해 주었고, 맑은 웃음으로 크게 소리 내어 웃을 수 있는 청아한 당당함으로 설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요 원천이 되어준, 잡지 안의 크고 작은 사연들과 이야기들을 사랑함을 고백한다.

 

지금 내 곁에는 변함없이 여러 종류의 잡지들이 여전히 스승의 몫을 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속열차를 타면서 즐겨보는 KTX 잡지가 놓여있고, 즐기며 사랑하는 스포츠잡지랑 문단에서 인연을 맺은 참 좋은 이가 발간하는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득 담은 잡지 하며, 여러 종류 문학 잡지가 가득하다.

 

이제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올 것이다. 계절은 오고 가지만 내 동반자들은 여전히 내 곁에 함께 머무르며 가르침의 미학을 완성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동반자와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얻은 대로 따뜻함을 쓸 것이며 정직함과 성실함을 훈훈하게 쓸 것이다.

 

누군가 곁에 놓인 잡지를 열어 내 글을 읽으며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가슴이 더워지며 다리가 가벼워지며 정신이 청아해 지면서 세상을 맑혀 나가길 기원하면서 말이다.

 

뜨거운 여름 어느 날로부터 날마다 1센티미터씩 하늘이 높아져 가는 가을의 초입까지 넉넉한 웃음으로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며, 화안하게 웃음 지을 수 있는 행운을 가져다준 잡지 속의 사연들이여 그대들에게 한없는 사랑의 기운이 있어라!

 

사람은 가르침 속에 배우고 가르침을 남기고 빈자리를 남기지만, 잡지는 어떤 형태로든 삶의 탱탱한 기운을 싣고 달려 사람들을 살만한 마음가짐으로 일으켜 세우며 끌어갈 것이다.

 

 

본문이미지▲ 박하경 시인  ©위드타임즈

[秀重 박하경 시인 프로필] 

출생: 전남 보성. 시인, 수필가. 소설가 

한국문인협회,한국소설가협회,경기광주문인협회 회원, 현대문학사조 부회장, 지필문학 이사, 미당문학 이사, 현대문학사조 편집위원. 종자와 시인 박물관 자문위원. 제2회 잡지 수기 대상 문광부장관상 ,경기광주예술공로상 등 수상, 송운당하경서재(유튜브 운영) 시집 : <꽃굿><헛소리 같지 않은 뻘소리라고 누가 그래?> 외 동인지 다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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