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 고추 만지기(4회)
고추가 가장 좋아하는 손길은 어떤 손길? / 박하경 수필가
위드타임즈 기사입력  2024/02/17 [09:01]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 고추가 가장 좋아하는 손길은 어떤 손길? [ 본문 중에서, 사진=박하경] 

 

 

고추가 가장 좋아하는 손길은 어떤 손길? 나름대로 정답을 내렸다.

 

아마도 유부녀의 손길을 가장 좋아할 것이라고. 왜 이런 결론을 내렸는고 하니 오늘 고추를 실컷 만질 수 있는 대박의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런 결론을 함부로(!) 내리는 것은 오늘 유부녀의 손길을 한껏 좋아하던 무수한 고추들을 본 증인이기 때문이다.

 

고추를 만지는데 참으로 보드라웠다. 그 감촉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마치 연하디 연한 송이버섯 만지는 기분도 들고. 길쭉하면서 매끄러운 부분은 어찌나 탐스러운지 만지던 손에서 놓기가 아쉬웠다.

 

고추 한 녀석이 저쪽 가지 아래 매달려 있다.

 

요렇게 허리를 비틀어 자세를 요염하게 취하고 눈길을 샐쭉하게 해서 쳐다보게 만드는 놀라운 재주를 지닌 녀석이다. 팔을 쭈욱 뻗어 고추녀석을 잡으려 하자 이 녀석 보게나. 반갑다고 덥석 내 손 안으로 든다.

 

유부녀 손길이 그리 좋은 겐지 손안에 들더니 붉디붉게 물들어 버린다.

예법 통통하게 살이 올라서인지 수줍어 붉어진 것이 참으로 색스럽다.

통통한 놈이 유부녀의 손안에 잡히는 것을 바라보던 그 옆 날씬한 고추가 시샘을 부린다. 저런…… 너도 내 손안에 넣어주마.

 

좀 더 고개를 수그리고 고추를 매달고 선 몸을 비틀자 이 녀석 즐거워 비명을 질러 댄다. 어서 나를 가져 주세요! 어서 당신 품에 들고 싶어요. 저 위에서 내려쬐는 뜨거운 태양볕에 제발 말라비틀어지지 않도록 나를 구원해 주세요.

 

여기저기서 시샘을 부리며 고추들이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유부녀 화들짝 놀라 함께

붉어지는 몸 사위…… 섰다 앉았다 엎드렸다…….

고추들은 유부녀 사랑의 몸 사위에 한껏 흥겨워하더라^^*

 

옆을 보니 밭 주인 이주희 집사가 열심히 고추를 딴다. 아, 고추 따는 모습 예쁘네.

고추 따러 가자고 한껏 보채던 모습이 너무 예뻐서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섰다가 고추에 홀딱 빠져버린 내 모습이 사뭇 흐뭇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녀는 한 두둑을 맡았고 난 좌우로 두 두둑을 맡아 동시에 따 나가는데 속도가 같다. 그녀가 고추를 따다 말고 진짜 일 잘한다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것아 너무 더워서 빨리 따고 에어컨 아래 가려고 발악하는 거다.

 

붉디붉은 색으로 채색된 고추를 따는 기쁨은 남다르다.

 

이 녀석들은 일 년 내내 우리의 밥상을 붉음으로 채색시켜 줄 색소이기 때문이며 나름대로 영양까지도 듬뿍 안고 있어서 우리 몸을 이롭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고추는 우리 식생활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주 양념이 되었다. 고추가 차지하는 넓이와 깊이는 상당해서 그 영역을 감히 넘보는 양념은 당분간 없을 거란 확신이 맞을 것이다.

 

고추는 임진왜란 때 일본이 독한 고추로 우리나라 사람을 독살할 목적으로 가지고 들어왔다는 설도 있지만 일본의 고문헌에는 오히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한다.

 

1850년대에 기록된 이재위의 몽유에는 북호에서 고추가 들어왔다 되어 있으니 중국과 일본을 통해 들어와서 널리 보급되었고 일본으로 역수출되었다는 것이 옳은 견해인 듯싶다.

 

여름에 잘 익은 고추를 수확해서 말려두어 가루를 빻아두면 일 년 내내 여러 가지 음식을 흡족하게 할 수 있는 첫 번째 꼽는 양념 준비를 하는 것이다.

 

요즘은 태양에 말린 태양초가 인기를 얻고 있고 일손이 부족한 농촌 현실에 손이 많이 가는 태양초보다 기계로 쪄서 말리는 형편인지라 태양초를 얻기 위해 물고추를 사다가 말리는 가정도 많다.

 

값싼 중국산 고추가 물밀듯이 보급되면서 토종 고추가 많이 밀리는 추세에 우리 농업을 다시 한번 재조명하면서 농촌을 과학화로 재정비해야 할 필요를 정부 차원에서 시행해야 한다고 본다.

 

오랜만에 잘 익은 고추를 딸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나에게 밭 주인은 글감을 준 것에 대해 감사하라며 너스레를 떤다.

 

커다란 바구니에 고추가 그득 담기면 자루에 넣는 기쁨을 한껏 누리면서 땅은 정직한 자에게 열매를 준다는 진리를 깨우친다.

 

고추가 언제 어떤 유래로 우리 민족에게 왔든지 고추는 이제 우리 민족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으뜸으로 꼽는 양념으로 자리를 잡았다.

 

단연 이 땅의 부인들에게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고추를 원 없이 사랑하며 만진 날이어서 기뻤고 군소리 없이 내 손 안으로, 품 안으로 들어준 고추들을 만지는 기쁨을 맘껏 누린 그득한 하루였다.

 

언제나 우리 땅에서 제맛을 가지고 제대로 대접받는 고추들의 행진을 지켜보고 싶다. 아. 또 고추 따러 가고 싶다. (2005년 작)

 

 

▲ 박하경 수필가  ©위드타임즈

  [秀重 박하경 수필가 프로필] 

출생: 전남 보성. 시인, 수필가. 소설가 

한일신학교 상담심리학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경희사이버대학사회복지, 노인복지학 전공 

월간 모던포엠 수필 등단(2004).월간 문학바탕 시 등단(2007).한국문인협회,한국소설가협회와 경기광주문인협회 회원, 현대문학사조 부회장, 지필문학 부회장, 미당문학 이사, 현대문학사조 편집위원. 종자와 시인 박물관 자문위원. 제2회 잡지 수기 대상 문광부장관상 ,경기광주예술공로상 등 수상, 시집 : <꽃굿><헛소리 같지 않은 뻘소리라고 누가 그래?> 외 동인지 다수 등 (현)운당하경서재(유튜브 운영)

 

 
필자의 다른기사메일로 보내기인쇄하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위드타임즈
#유부녀고추만지기 # 박하경수필가, #유부녀고추만지기 # 박하경수필가 관련기사목록

윤종신, 오늘(3일) ‘행보 2023 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