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끈에서 해방되기(51회)
오수열(조선대학교 명예교수·광주유학대학 학장)
위드타임즈 기사입력  2025/01/2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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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몸담았던 대학에서 정년퇴임한지도 수년이 지났고, 주위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다.

 

소년시절 우리 동네에서 가장 나이 많다고 하여 ‘상노인’(上老人)으로 불렸던 샘갓집 어르신의 연세가 당시 70대 중반이었는데, 내 나이가 벌써 그에 가까워 가고 있다.

돌이켜 보면 바로 엊그제 같은데 결코 짧지 않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인연(因緣)으로 맺어진 인간관계들이 어찌 하나 둘이겠는가.

 

젊었을 때는 학연(學緣)으로 연결된 관계들이 많았는데, 향교(鄕校)에 나다니게 되면서 부터는 혈연(血緣)으로 맺어진 인연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평소부터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를 소중하게 여겨온 사람으로 지역사회의 이곳저곳에 관계하다 보니 사회활동으로 시작된 인연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정년퇴임이라는 인생의 분기점을 넘기면서 나의 삶에도 커다란 변화가 불가피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행동반경이 축소되고 있고 지금껏 유지되어온 관계들을 하나둘씩 정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구독하고 있던 일간지들도 줄이는 수밖에 없고 장기 구독하던 문학잡지들도 양해를 구하며 중단시켜 가고 있다. 최근에는 장기 구독하던 지역신문 하나를 끊어야만 했다.

경제적인 이유는 둘째 치고, 무엇보다도 읽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가는가 하면 쌓아둘 곳이 마땅치 않으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평생을 학문하던 사람이니 전공과 관련된 책들이 어찌 적을 수 있겠는가. 연구실은 물론이고, 시내 사무실과 자택 등 세 곳 모두가 책들로 가득 채워졌다.

이를 지켜본 어떤 이들은 책을 제본하는데 쓰어진 접착제에서 풍겨져 나오는화공 약품이 건강에 해롭다면서 책을 좀 줄이라고 충고하기도 할 정도였다.

퇴임하고 2년이 지나 연구실을 비워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때 직면한 첫 번째 난제(難題)가 가득찬 책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도서관에 기증하여 나의 아호(雅號)를 딴 문고(文庫)를 하나 만들까?'는 호사스러운 꿈은 이미 옛날적 일이다. 기증하겠다고 해도 가져가겠다고 나서는 도서관이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나의 손때가 묻었고 거의 나의 분신으로 여겼던 책들이지만 “라면 값이라도 하시라”며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에게 드리는 수밖에 없었다.(2022년 작)

 

본문이미지▲오수열 학장 © 위드타임즈

[오수열 교수 프로필]

조선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타이완국립정치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중국인민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했다.  

조선대에서 법인사무국장, 사회과학연구원장, 사회과학대학장, 기획실장, 정책대학원장, 신용협동조합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정년퇴임하였으며, 민주평통상임위원, 성균관 자문위원, 광주유학대학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조선대학교 명예교수와 한국 동북아학회 이사장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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