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국가 인도의 고뇌와 잠재력 I (10회)
"간디의 묘소와 타지마" 오수열교수
위드타임즈 기사입력  2021/04/1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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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독립의 아버지 간디의 묘소  ⓒ 오수열

 

대사관 방문을 마친 후 우리는 인도 독립의 아버지인 간디의 묘소를 찾았다. 영국의 식민통치에 신음하는 인도의 독립을 폭력투쟁이 아닌 ‘비폭력저항’으로 이끎으로서 희생을 줄이고 최후의 승리를 담보해 낸 간디에 대한 인도인의 존경심은 대단하다고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인도인들의 이러한 존경의 밑바탕에는 간디가 독립투쟁의 최선봉에 섰음에도 독립 후에는 대통령이나 수상 등 권력을 탐하지 않는 것과도 무관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

 

간디의 묘소 위에 예쁘게 장식된 꽃들이 놓여있고, 힌디어로 우리의 ‘님’에 해당되는 ‘지’를 붙이는 유일한 사람이 간디라고 하는데에서 참 애국자의 헌신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 델리대학교 교문에서 ⓒ 오수열 

 

우리 일행의 가장 큰 관심은 거대한 발전도상국가 인도가 교육에 얼마나 관심을 갖는가와 특히 대학교육 현황에 있었던 만큼 가이드에게 대표적 대학인 두어 곳을 방문할 수 있는 일정 안배를 요청하였다.

 

이 과정에서 인도가 교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탄탄한 기초과학의 토대가 형성되어 있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날 인도에는 4백만 명의 대학생과 1천8백만 명의 고등학생이 있는데 특히 최고 학부로서의 델리대학과 대학원 중심의 네루대학은 이 나라의 장래를 담보하는 인재양성기관으로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네루대학의 경우 1백만 평에 달하는 캠퍼스에서 2천여 명의 학생과 5백여 명의 교직원이 마음껏 연구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특히 이들이 한 학기에 내는 학비가 500루피(약 15만 원)에 불과한 것에서 어려운 국가 재정에도 불구하고 인재양성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두드러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델리에서의 일정을 마친 우리는 다음날 버스를 이용하여 델리에서 동남쪽으로 200여km 떨어진 쟈무나 강기슭에 위치한 아그라로 향하였다. 이곳은 인도를 찾는 이는 누구든 가보고 싶어 하는 타지마할이 있는 곳으로 무갈 왕조시대인 16~17세기 중엽까지 인도의 수도였던 곳이다.

 

▲ 세계 7대 불가사의 '타지마할'  ⓒ 오수열

 

아그라 관광의 백미는 단연 ‘타지마할’이다. 무갈왕조 제5대 황제인 샤자한(Shāh Jahān)이 사랑하는 아내 뭄타즈 마할(Mumtāz Mahal)의 죽음을 애도하여 나라의 모든 역량을 총 동원하여 지은 것으로 1633년에 시작하여 22년 만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빛과 그림자에 의해 시시각각 그 모습이 변한다고 하며 특히 그 모습이 전면부에 길게 위치한 연못에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나는 모습은 가히 신비함을 더해 주었다.

 

그런데 애석하게 벽을 감싸고 있는 영롱한 색채의 타일이 그것을 지니고 있으면 액운을 물리친다는 속신(俗信) 때문에 적지 않게 훼손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또한 아직 문화재 보호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인도의 현실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단아하면서도 아름다운 아그라성 ⓒ 오수열

 

타지마할의 전경을 보다 뚜렷하게 감상하려면 자무나강 맞은 편에 있는 아그라성 위로 올라가는 것이 좋다. 이 성은 무갈제국의 3대 황제 악바르(Akbar)가 건축하였는데 훗날 5대황제 샤자한에 의해 사후 자기가 묻힐 곳으로 증축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샤 자한이 타지마할과 아그라성 증축으로 나라 살림을 거덜내자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Aurangeb)가 부황을 이 성의 방 한 칸에 감금해 버렸다. 결국 샤자한은 이 아그라성을 완성하지도 못하고 1665년 타지마할이 창 너머로 건너다 보이는 방에서 숨을 거두었다. 끝이 없는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비극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역사가 아닐까 싶다.

 

아그라를 둘러본 다음날 우리의 여정은 델리로 돌아와 독립 인도의 정치적 기틀을 다진 네루의 기념관과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짜여져 있다.

 

알라하벳의 귀족 출신으로 일찍이 영국에 유학,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귀국한 뒤 간디에 감화되어 독립운동에 투신한 네루는 투옥과 출옥을 반복하였으며 1947년 인도가 독립을 쟁취한 후 수상 겸 외상으로 재임하며 인도를 비동맹그룹의 지도적국가로 만들었던 정치인이다.

 

그러나 비록 파키스탄과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변화되기는 하였으나 그가 초기에 보였던 사회주의적 정책들은 인도의 경제적 낙후를 가져온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평가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기도 한다.

 

더욱이 그의 사후 그의 외동딸인 인디라 간디가 총리직에 올라 장기집권하면서 경제침체와 인종분규에 시달렸고 1984년 10월 시크교도에 의해 암살된 후에는 다시 그녀의 아들 나지브 간디가 총리에 취임하는 등 3대에 걸친 세습은 인도를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함으로써 네루가(家)의 명망은 많이 퇴색되었다.

 

 * 이 글은  오수열교수의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오수열 학장

*이 글을 쓴 오수열 교수는 조선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타이완국립정치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중국인민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했다조선대학교에서 사회과학대학장기획실장정책대학원장 등을 역임한 후 정년 퇴임하였으며 현재는 조선대학교 명예교수와 광주유학대학 학장, ()21세기남도포럼 이사장한국동북아학회 이사장 등을 맡아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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