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나라 같지 않는 타국 쓰시마(對馬島) (13회)
"가깝고도 먼 섬 쓰시마" 오수열 교수
위드타임즈 기사입력  2021/05/0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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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을 맞아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쓰시마에를 다녀오기로 하였다. 사실은 4년 전인 2012년 7월에도 남도포럼 회원들과 함께 1박 2일로 가볍게 다녀온 바가 있는데 너무도 짧은 일정 때문에 주마간산(走馬看山)의 여행이 되다 보니 못내 아쉬움이 남았던 터이다.

 

더욱이 그때의 일정이 1박 2일이다 보니 부산에서 출발하여 쓰시마 남부의 중심도시인 이즈하라(厳原)에 도착하여 그 부근만을 둘러 볼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북부지역을 다음으로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이번에는 부산에서 이즈하라까지의 선편을 택하지 않고 일부러 부산에서 히타카쓰(比田勝)까지의 선편을 이용하여 지난번 둘러보지 못한 북 쓰시마 지역을 먼저 보고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맑은 날에는 부산 해운대에서 아스라이 보일 만큼 우리나라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섬이 쓰시마이고, 못생긴 고구마처럼 남북으로 길게 뻗어 부산에서 북쪽의 히타카쓰 국제여객터미널까지는 1시간 10분, 남쪽의 이즈하라 국제여객터미널까지는 2시간이 소요된다.

 

7월 18일 새벽 3시쯤 남도 포럼 회원 일행을 태우고 광주에서 출발한 버스가 아침 7시 무렵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하자 이번 쓰시마 여행에 함께 하기로 한 경향 각지의 한국동북아학회 소속 교수님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4년 전 쓰시마 여행 때 받았던 깊은 감동을 전하며 ‘좋은 시간을 함께하자’라는 필자의 제의에 따른 결과이다.

 

우리 일행을 태운 JR큐슈고속의 비틀호가 1시간 10분의 항해 끝에 히타카쓰항에 도착한 것은 정확히 10시 10분이었다. 간단한 입국 절차를 마치고 전용 차량에 탑승한 우리가 맨 먼저 방문한 곳은 1905년 5월 러일전쟁 때 일본이 당시 러시아가 세계 최강이라고 자랑하던 ‘발트함대’를 격파한 곳이자 러시아 병사들이 상륙했던 곳인 도노자키(殿崎)였다.

 

 

▲ 러일전쟁 100주년 기념비  © 오수열

 


사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동아시아를 제패하는 데 최대 걸림돌은 러시아였던 데에서 두 나라의 충돌은 어찌 보면 불가피했으며, 특히 러시아의 남진(南進)을 우려한 영국과 미국이 일본을 지원하였고 러시아해군이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오느라 피로에 지친 점을 감안할 때 일본의 승리는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떻든 이 전투에서 일본은 승리를 거두었고, 발트함대 사령관 Z.P.로제스트 벤스키 제독(Zinovy Rozhestvensky)은 포로의 신세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승리와 러시아의 패배 후의 강화조약에서 양측은 ‘조선반도에서의 일본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는 등의 12개 항에 합의하였고, 이는 곧 같은 해 11월의 을사늑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러일전쟁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5년 세워졌다는 ‘러일전쟁 100주년 기념비’에는 전쟁 당시의 주요인물들인 도고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 일본군 사령관, Z. P.로제스트벤스키 러시아 발트함대 사령관이 함께 조각되어 있었고 기단 양쪽에 ‘友好’, ‘平和’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어 우리를 씁쓸하게 하였다. 

 

 

▲ 에보시다케 전망대에서   © 오수열

 


다음으로 들른 곳은 쓰시마 최북단인 와니우라(鰐浦)에 위치한 한국전망대였는데, 이곳은 쓰시마에서 한국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한국까지는 49.5km, 일본의 후쿠오카 까지는 132km로 한국이 훨씬 가깝다보니 청명한 날에는 부산시의 거리를 볼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특히 이색적인 것은 전망대의 건축양식이 한국식 기와지붕을 한 팔각정 형식을 띤 점이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서울 파고다공원의 정자를 모델로 하여 1997년에 지어졌다고 하며 건축에 들어간 모든 재료들도 한국에서 들여왔다고 하니 한국 관광객을 배려한 일본인들의 철저한 상인정신과 준비성을 여기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 팔각정   © 오수열

 


일본에 세워져 있는 팔각정 전망대에서 한반도를 조망하는 이색체험을 끝내고 우리들은 에보시다케 전망대로 향했다. 한국 전망대가 대마도에서 한국을 바라본다는 특이함이 있다면 에보시다케 전망대는 쓰시마 일대의 다도해(多島海)와 리아스식 해안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대략 제주도의 3분의 1(울릉도의 10배)에 불과한 709㎢의 면적에 상·하의 2개 섬이 있고 여기에 모두 109개의 올망졸망한 섬이 딸려 있을 만큼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는 곳이 쓰시마이니 지형에 어두운 러시아 해군이 일본군의 유인전술에 걸려들었던 것은 당연하지 않았겠는가….

 

무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전망대에 오른 우리에게 울창한 아열대 수종(樹種)으로 뒤덮인 크고 작은 섬과 낮게 깔린 운무는 우리의 눈을 번쩍 뜨게 해주었다. 서쪽의 해협 건너 보이는 산들이 한국이라고 하니 이곳에 전망대를 세운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 되었다.

 

 

▲ 와다즈미신사   © 오수열

 


전망대에서 내려온 우리들은 쓰시마 유일한 용왕신사(龍王神社)라는 와다즈미 신사(和多都美神社)를 거쳐 만제키바시(万関橋)로 향하였다. 만제키바시는 원래 하나로 이어져 있던 쓰시마섬을 상하(上下)로 분리시킨 인공해로(海路)인데, 이는 1900년 동쪽의 미우라만과 서쪽의 아소만을 인공적으로 굴삭하여 통항(通航)이 가능하도록 하고 위에는 다리를 건설하여 연결시킨 것이다.

 

 

▲ 만제키세토 군함 은폐처   © 오수열 



일본이 이처럼 길이 300m, 폭 22m, 수심 3m의 운하를 개설한 목적은 아소만의 군함을 쓰시마섬 동쪽으로 빨리 이동시키기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1905년 러일전쟁 당시 만제키바시 안쪽의 만제키세토의 아열대숲 속에 은폐 · 대기하던 일본 함대가 9개월에 걸친 긴 항해로 최악의 상태 속에 쓰시마에 도착한 발틱함대를 일거에 격파함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침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 만조를 이룬 만제키바시 밑의 해류는 진도 울돌목을 연상케 할 만큼 여러 겹의 소용돌이를 형성하였고, 다소 고소공포증이 있는 필자는 다리 위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편치 않을 만큼 아찔함을 느껴야 했다.

 

이처럼 쓰시마의 북쪽 관문인 히타카츠항에서 출발하여 쓰시마를 두 곳으로 나누는 만제키바시까지를 두루 살펴보고 나니 어느덧 땅거미가 찾아왔고 우리 일행이 피곤해 지쳐 보였던지 가이드의 “저녁식사 전에 1시간의 목욕으로 피로를 풀겠느냐”는 제안이 그토록 고마울 수가 없었다.

 

비록 1시간의 짧은 목욕이긴 했지만, 모두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고, 이곳에서는 최고급에 속한다는 쓰시마호텔에서의 돼지고기 삼겹살 바비큐에 소주 한잔을 곁들인 만찬은 우리 모두에게 극락이 부럽지 않다는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술(酒)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하루 종일의 강행군에 지칠 법도 하건만, 거의 주선(酒仙)의 경지에 도달한 강효백 교수는 말할 것도 없고, 평소에는 그다지 술을 즐기지 않는 양병기, 김태웅, 윤성석, 김형수 교수 등도 밤이 깊어가는 줄도 잊은 채 하루의 여정을 화제 삼아 정담에 여념이 없었다. 여행이란 참으로 사람을 가깝게 하는 마력(魔力)을 지니고 있는 요술단지가 아닐까 싶다.

 

* 이 글은  오수열 교수의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오수열 학장 

* 이 글을 쓴 오수열 교수는 조선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타이완국립정치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중국인민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했다조선대학교에서 사회과학대학장기획실장정책대학원장 등을 역임한 후 정년 퇴임하였으며 현재는 조선대학교 명예교수와 광주유학대학 학장, ()21세기남도포럼 이사장한국동북아학회 이사장 등을 맡아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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