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여행] 인천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작은 중국,' 인천 차이나타운'
한상진 기자 기사입력  2022/09/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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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청나라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북성동과 선린동 일대에 중국상점과 음식점이 형성된 곳이다.

 

개항 당시 청나라 상인이 부두와 가까운 이곳에 터를 잡아 현재 인천 중구 일대의 화교는 1,000여 명 정도이다. 그중 절반이 넘는 사람이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모여 산다.

 

 

▲ 인천 개항 당시 기념조형물 및 인천차이나타운 종합 안내  ©한상진 기자

 

 

인천 차이나타운 과거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물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대부분이었으나 현제는 대부분 중국 음식점으로 변하고 있어서 중국의 전통문화가 퇴색되고 있는 현실이다. 

 

현재 중화 거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 거주 화교들은 초기 1~ 2세를 거쳐 3세~5세들이다.  1세들이 지키고 있었던 전통문화를 많이는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중국의 음식 맛은 고수하고 있다.

 

한국에서 차이나타운 하면 떠오르는 곳이 인천 차이나타운이다. 인천역에서 내리면 건너편 현판에 중화가(中華街)라고 쓰인 차이나타운의 패루가 자리하고 있다.

 

붉은 기둥 위에 지붕을 앉은 중국식 전통 대문은 중국인들이 귀신을 쫓아내고 상가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로 동네 입구에 세웠던 마을의 대문이다.  

 

붉고 화려한 패루는 차이나타운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말해준다. 붉은색과 금장으로 치장한 대문으로 들어오면 화상(華商)들의 활기찬 모습과 중국 여성의 전통 복장인 치파오를 본떠 만든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과 심심찮게 들려오는 중국어…. 영락없는 중국이다.

 

 

▲ 인천 차이나타운의 시작, 타중화가(中華街)라고 쓰인 전통대문 페루 ©한상진 기자

 

 

인천에 정착한 화교들은 대부분 인천과 가까운 산둥(山東)반도 출신이었다. 개항장이 번성하던 시절 산둥의 정치와 사회 상황이 불안정했기 때문에 1911년 신해혁명 이전에 이주한 중화민국 출신 화교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중화민국의 공식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를 쉽게 볼 수 있으며, 중국인 거주지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인 선입견과 달리 치안도 최고 수준이며 사람들도 매우 친절하다. 

 

거리에는 수십개의 중화요리집과 중국제과점, 카페가 성업 중이며 삼국지 벽화거리, 자유공원, 동화마을 등 여러 볼거리가 많다. 주말에 방문하면 거리를 가득 채운 관광객들과 이름난 중국집 앞에 길게 줄선 사람들을 볼 수 있다.

 

 

▲ 인천 차이나타운 거리 관광객 모습  © 한상진 기자



이외에도 인천화교소·중산중고등학교, 만두집, 도교 사원, 불교 사찰, 공묘, 중화감리교회, 짜장면박물관, 화교역사관, 한중문화관, 자유공원, 인천항, 천주교 인천교구 주교좌 답동성당, 대한성공회 내동성당, 구 선교사 자택, 적산가옥 등 볼거리가 많다.

 

한나절을 걸어서 역사의 거리를 느껴보고, 출출하면 맛있는 식당에서 이국적인 식사도 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지금부터 101년 전, 온 국민의 대표 먹을거리인 자장면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개항 후 청나라 사람이 모이고 청요릿집도 하나 둘 생겨났다. 하지만 부두 노동자에게 고급 요리는 그림의 떡이었다. 이들은 값싸고 간편한 먹을거리를 원했고 이에 1905년 ‘공화춘’이라는 음식점에서 춘장을 볶아 국수를 비벼낸 자장면을 만들었다.

 

매년 9월과 10월엔 각각 인천-중국의날 문화축제와 짜장면 축제가 열린다.

 

자장면에서 자장(炸醬)은 '장을 볶는다' 라는 뜻이다.  이때의 장은 밀가루로 만든 까만색의 춘장을 말한다. 즉 자장면은 춘장을 볶아서 만든 국수란 뜻이다. 자장면은 우리나라에서 화교들이 한국인의 입맛에 만든 것이라 실제 중국에는 우리와 같은 자장면은 없다. 

 

'공화춘'은 중국 화교들에게 또 다른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는 건물이다. 

 

1911년 신해혁명이 발발하고 쑨원과 중국동맹회가 중국으로 귀국하기 전까지, 세계 각지 화교는 혁명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화교들은 후원금을 모아 무기를 사고, 청 황실의 부패를 끊임없이 외국에 폭로하면서 공화국 수립을 위한 혁명 과정에 제 역할을 다했다.

 

신해혁명 속 화교들이 남긴 헌신의 흔적은 110년이 지난 지금도 ‘공화춘’이라는 이름으로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에 남아 있다. 공화춘은 '공화국의 봄'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지하철 1호선 인천역에서 내려 광장 앞에서 바라보면 차이나타운과 동화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송월동 동화 마을은 차이나타운 거리와 이어져 있다. 

 

동화마을 입구에서 부터 도로시 길, 섬의 나라 길, 빨간 모자 길, 전래동화 길, 유럽도시 길, 네델란드 길, 동물나라 길, 엘리스 길, 바다나라 길,북극나라 길, 신비의 길 등으로 이어져 있다.

 

동화마을에서는 알록달록 무지개 옷을 입은 동화 속 친구들과의 만남이 기다려진다. 푸른 솔향기가 넘치는 아름다운 동화마을로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 가득 안고 자녀나 손주를 데리고  떠나고 싶은 곳이다.

 

송월동 동화마을에 가면 사랑에 빠진 피노키오, 신데렐라와 호박마차, 자이언트리, 흥부와 놀부 등 포토 존 10선이 있다. 

 

▲인천 차이나타운 2005년 건립된 한중문화관   © 한상진 기자

 

 

▲ 인천 차이나타운, 한중원 쉼터  ⓒ 한상진 기자



▲ 인천 차이나타운, 중국식 사당 '의선당' © 한상진기자

 

 

▲ 인천 차이나타운 포토존   © 한상진 기자

 

 

▲ 인천 차이나타운 ‘구)공화춘’을 개조한 짜장면 박물관,, 1층은 1960년대 공화춘 주방의 모습을 재현했으며 2층에서는 짜장면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 한상진 기자

 

 

▲ 인천 차이나타운 벽화(초한자,삼국지)거리  © 한상진 기자



▲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조성한 관광체험형 황제의 계단 입구  © 한상진 기자

 

 

▲ 인천 차이나차운 중국 음식점   © 한상진기자



▲ 인천 차이나타운 송월동 동화마을 입구 아치형 조형물 © 한상진 기자

 

 

▲ 인천 차이나타운 ,송월동 동화마을의 거리 © 한상진기자

 

 

▲ 인천 차이나타운 ,동화마을의 상징인 팬더 조형물  © 한상진 기자



▲ 인천 차이나타운 ,동화마의 벽화 © 한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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