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달꽃 찬사 (8회)
내 몸을 붉게 꽃 피워 준 달꽃 / 박하경 수필가
위드타임즈 기사입력  2024/03/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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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몸을 붉게 꽃 피워 준 달꽃[ 본문 시 중에서] 



내 몸이 스스로 피를 토해 붉은 달꽃을 달마다 피워내기 시작한 것이 중학교 3학년 그해 뜨거운 7월이었다. 중학교 3학년 여름.

 

태양이 끓어대자 7월은 환장할 열기로 운동장을 가득 채워 버렸던 그날 아랫배가 끊어질 듯 사납게 자지러지게 아프더니만 울컥 붉은 선혈로 꽃 한 송이씩 토해내기 시작했다. 머리가 어지럽고 아팠으며 멀미가 나는 것처럼 속이 매스꺼웠다.

 

벼락같은 신열로 찢어질 듯 뒤틀리는 아랫배를 움켜쥐고 학교에서 간신히 돌아와 들어선 마당에서 엎어져 뒹굴고 말았다.

 

큰일 났다 싶은 할머니의 마음이 안절부절 마당 가를 오르내리며 동동거렸지만 할머니는 달꽃의 정체를 파악하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웃음이 만연해지셨다. 곧장 남동생을 불러 1킬로미터쯤 거리에 있는 군머리라는 곳에 딱 하나 있는 약국에 가서 진통제를 사 오라고 심부름을 시킨 것으로 할 일을 다하셨다는 태도였다.

 

나는 여전히 온 마당 천지를 붉은 꽃으로 수놓고 있음에도.

 

이렇게 피어나기 시작한 붉은 꽃은 다달이 열두 달을 끊이지 않고 피워주었기에 나는 달꽃이라 이름 지었다.

 

달꽃은 어찌나 나를 귀찮게 하던지 밤새 자는 시간에도 이불까지 옮겨 가 피어나기 일쑤였고 옆사람 잠옷까지 넝쿨을 뻗어 장미로 피어났다.

 

온 집안 식구들은 이렇게 찬연한 달꽃을 피워낸 날 마땅찮게 사시가 되어 쳐다보았고 나는 그 눈총이 따가워 더더욱 달꽃에 정들지 않았다.

 

달꽃은 담장 넘기를 좋아하는 속성을 지녔다.

 

깊고 은밀한 그곳에서만 피어나야 할 달꽃이건만 달꽃은 늘 강이 되고 싶었나 보다.

보다 높은 둑을 쌓아도 달꽃은 척척하게 대지를 적시며 은밀한 곳을 탈출하여 강으로 흘렀다.

 

그러면 내 육신은 여지없이 바다가 되는 것이었다.

 

어느 달은 새하얀 옷을 입고 외출 중에 있었는데 스멀스멀 담장 밖을 엿보더니만 슬쩍 줄기를 뻗고 탐스러운 장미 한 송이를 양지바른 엉바지에 피워놓고 말았다.

 

달꽃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부끄러움은 곧 수치스럽다고 철없는 생각에 머무르고 말았다. 나는 달꽃이 어서 져버리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고사떡이라도 해놓고 빌고 싶은 심정이 될 때도 있었다.

어서 달꽃아 져버려라 애시 귀찮은 존재였으니 내 몸에서 더 이상 꽃 피우지도 말고

 

강이 되어 온몸을 바다로 적시지도 말거라.

 

어느 때는 철없는 기도가 하늘을 찔러 하늘이 시끄럽다고 귀를 닫을 만큼이나 귀찮아했다. 그런데 이토록 귀찮게 여겼던 달꽃은 내게 있어 가장 귀한 보물을 안겨 주었다.

 

두 아들 녀석을 덥석 물어다 준 것이다.

 

한 녀석은 해님 나라에서 물어오고 또 한 녀석은 달님 나라에서 물어다 준 것이다.

녀석들에게선 활짝 개인 해님내음과 달님나라의 바람내음이 났다.

 

두 보물을 얻고 나자 더 이상 보물 얻을 욕심이 없어졌다.

 

그러자 다시 달꽃이 귀찮아졌다. 한 달에 한 번씩 어김없이 피지 말고 두어 달 혹은 서너 달에 한 번만 피어 주어도 좋을 거라는 희망을 간간이 전하곤 했지만 달꽃은 질듯 사윌 듯하면서도 변함없이 피워내는 인내의 화신이었다.

 

끈질긴 인내로 주인의 타박에도 굴하지 않고 피었던 달꽃이, 어라어라 어어어... 힘이 빠지고 지친 듯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시들시들 숨소리가 약해졌다.

 

어디 아픈가 퍼뜩 정신을 차려 돌보려 하자 내 나이 마흔을 훌쩍 넘어 중반이 되어있다. 언제 이토록 긴 여행을 정신없이 했더란 말인가.

 

기진맥진한 달꽃을 깨우려 살살 달래도 보고 어루만져도 보지만 이제 달꽃은 소생보다는 그저 있는 모습으로 주인 곁에 머물겠다는 의지밖에는 보이질 않는다.

 

이제 달꽃은 강으로 흐를 힘도 잃어버려서 내 몸을 바다로 적시지도 못한다.

30년 동안 줄기차게 담장을 넘어 양지바른 엉바지에 찬연히 피어 흐르던 붉은 장미도 더는 피워내지 못한다.

 

이제야 주인은 달마다 피워준 달꽃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애지중지 물을 주고 사랑으로 거름을 삼아 보지만 달꽃은 많은 힘을 잃어버렸고 이제는 달나라로 떠날 채비를 한다.

 

조금만 더 머물러 내게 달꽃을 피워주려 마.

 

근 20여 년 세월 동안 지치지도 않고 변함없이 탈 없이 내 몸을 붉게 붉게 꽃 피워 준 너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리니 정열의 생명을 지녀 내게 또 다른 생명을 맛보게 했던 그 진하디진한 감동을 준 그대를 찬양하며 찬사를 보내노니. 진정으로 감사하였노라고!  (2005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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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하경 수필가  ©위드타임즈

  [秀重 박하경 수필가 프로필] 

출생: 전남 보성. 시인, 수필가. 소설가 

한일신학교 상담심리학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경희사이버대학사회복지, 노인복지학 전공 

월간 모던포엠 수필 등단(2004).월간 문학바탕 시 등단(2007).한국문인협회,한국소설가협회와 경기광주문인협회 회원, 현대문학사조 부회장, 지필문학 부회장, 미당문학 이사, 현대문학사조 편집위원. 종자와 시인 박물관 자문위원. 제2회 잡지 수기 대상 문광부장관상 ,경기광주예술공로상 등 수상, 시집 : <꽃굿><헛소리 같지 않은 뻘소리라고 누가 그래?> 외 동인지 다수 등 (현)운당하경서재(유튜브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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