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롭게 산다는 것(32회)
오수열(조선대 명예교수. 한국동북아학회 이사장)
위드타임즈 기사입력  2024/01/09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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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부쩍 정의(正義)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아마도 세월호 참사에 얽혀있는 각종 사회적 병리현상(病理現象)을 목격하면서 사회과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적지 않는 자괴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작년 여름 군사학부 교수공채를 두고 나와 사회대의 몇몇 젊은 교수들 간에 이견이 있었고, 학내 게시판을 통해 갑론을박이 전개된 것이 급기야 쟁송으로까지 번진 것으로부터도 영향이 없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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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나의 지난 삶을 돌이켜 회상해 본다. ‘참으로 험난한 세월 속에 굴곡진 인생을 살아 왔구나’ 하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특히 1988년 초 대학이 민주화되었으니, 복직하라는 통보를 받고 타이완 유학에서 귀국한 이후 나의 삶은 평탄하지가 못하였다. 뭐하려고 ‘구경영진비리조사위원회’의 책임을 맡을 것인가…. 그때부터 내 삶은 평탄하지가 않았다.

6년 만에 복직하였으니 학교야 죽을 쑤든 탕을 끊이든 조용히 주어진 강의와 연구에만 충실하면 되었을 터인데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뛰어 들었으니 내 몸이 성할 리가 있겠는가.

사무국의 책임자로 있을 때 어떤 금융회사로부터 얼마간의 장학금을 받은 것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이라는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범죄행위에 해당되는 줄을 어떻게 알았을 것인가. 결국 돈의 냄새도 맡아보지 않았지만, 벌금형이라는 억울한 딱지를 붙이고 살게 되었다.

작년의 일만 해도 그렇다. 학부, 석․박사과정의 제자로 10년 넘게 내 곁에서 맴도는 김박사가 정당하게 최종합격하여 임용예정자로 발표되고, 이사회(理事會)에 임용제청까지 되었으니 정말로 축하할 일이었다.

그런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 그의 논문이 표절이라는 익명의 투서(投書)가 날아들더니 곧이어 다섯 사람의 집단행동이 개시된 것이다. 그 절묘한 수법과 재빠른 행동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김박사의 억울해하는 것을 차마 그대로 넘어갈 수 없었다. 공교롭게 다섯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공채 때 나의 도움을 받은 바도 없지 않아, 다소 격앙된 감정이 섞여 꾸중을 하였다. 선배교수로서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으로 알았고, 설마 이러한 일로 고소까지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정의! 바를 정(正)과 옳을 의(義)의 합성어이니, 그대로 해석하면 ‘바르고 옳게 사는 것’을 뜻할 것이다. 물론 나도 세상이 반드시 정의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 한다’는 말도 없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억울한 일을 당하여 분해하는 사람, 특히 그 사람이 기득권층의 횡포에 짓밟히는 것을 보고도 일신의 안일만을 위해 침묵한다면 이 사회는 어찌 될 것인가.

 

어제는 오랫동안 수사관으로 일한바 있는 젊은이를 만났다. ‘이러한 경우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라고 최근의 상황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나! 그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교수님, 비겁하지만 침묵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괜히 남의 일에 얽혀들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를 볼 적마다 가슴에서 무언가 끓어 올라옴을 느끼고, 고위공직에서 퇴직한 후에도 유관기관에 재취업하여 호의호식하는 모습에도 메스꺼워 지는 것을 느끼는 나로서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이미 오래전에 독일의 철학자 키에르케골은 ‘정의는 죽었다’고 단언하였고 ‘하버드대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라는 수식어가 붙은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아무리 읽어 보아도 정의가 무엇인지 손에 잡히지 않으니, 정의는 영원히 신기루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2014년 작) 

 

 

본문이미지▲오수열 교수 © 위드타임즈

[오수열 교수 프로필]

조선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타이완국립정치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중국인민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했다.  

조선대에서 법인사무국장, 사회과학연구원장, 사회과학대학장, 기획실장, 정책대학원장, 신용협동조합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정년퇴임하였으며, 민주평통상임위원, 성균관 자문위원, 광주유학대학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조선대학교 명예교수와 한국 동북아학회 이사장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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