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국가 인도의 고뇌와 잠재력 I (8회)
"인도의 현재와 미래" 오수열교수
위드타임즈 기사입력  2021/03/3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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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도의 세계를 이야기할 때는 그 신비스러운 종교와 이질적이고 다채로운 왕조들의 휘황찬란한 문화 그리고 현란하고 정감 넘치는 파란만장한 사건의 연속 등,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의 세계를 거니는 것 같은 환상에 빠져들게 되고 이러한 감상은 실제 인도를 둘러보게 되면서 더욱 깊게 인식되게 된다.

 

국제정세가 탈냉전화 추세를 지향하면서 우리의 대외정책도 미국과 일본 등 강대국 일변도에서 탈피하여 다변화됨에 따라 지금까지 우리의 관심 영역 밖에 있는 곳으로 인식됐던 동․서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과 같은 제3세계가 우리의 새로운 외교․경제적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제 3세계 특히 서남아시아의 지도적 국가로서 국제 정치와 지역 경제에 적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도에 대해 우리가 새롭게 인식하고 상호교류의 폭을 넓히기 시작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여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는 각 대학의 교수들에게 서남아지역에 대한 시찰기회를 마련하였는데, 필자도 그 일원으로 1992년 1월 7일간 인도의 이곳저곳을 살펴볼 기회를 얻었다. 이 글에서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러 가지 요인으로 말미암은 갈등과 가난 속에서 고민하는 인도의 현재와 그 장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인도는 유라시아대륙의 남부, 남아시아에 위치하고 있는 328만여㎢의 면적(한반도의 15배, 남한의 33배)에 약 8억 5천만 명의 인구를 포용하고 있는 거대한 나라이다. 언어는 헌법상 힌디어를 포함한 15개 언어가 공용어로 인정되고 있으나 힌디어와 영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종교는 힌두교가 전체 국민의 82%, 회교가 11%, 시크교가 2%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는 기독교, 배화교 등 여러 종교가 점하고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언어와 종교는 카스트 제도와 함께 인도의 오랜 역사에서 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현실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도라고 하면 협의의 인도공화국만을 지칭하기 쉬우나 넓은 의미에서는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및 부탄까지도 인도의 문화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며 여기에 포용 되는 인구는 10억 명을 상회한다.

 

광대한 국토를 가진 인도는 크게 동부, 서부, 납부, 북부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는데 동부는 벵골만에 흘러드는 갠지스강과 다모다르강을 중심 삼아 발달한 지역으로 일찍이 이곳이 영국의 인도 침략의 거점이었음은 아직도 이곳의 중심도시인 캘커타의 시가지 곳곳에 빅토리아식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음에서 역력히 나타나고 있다.

 

우리 일행이 인도 방문의 제1보를 내디딘 곳도 동북부의 중심도시 캘커타였다. 11시 45분 방콕공항을 이륙하여 1시간의 비행 끝에 캘커타공항에 도착하니 동남아국가와는 또 다른 느낌이 밀려 들어왔다.

 

입국장을 빠져나와 미리 기다리고 있는 버스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풍경에서 이곳이 바로 ‘인도’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관광객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어린애들이 우리 일행을 향해 우르르 몰려들어 손을 내밀며 1달러의 적선을 강요하면서 승차를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입국장을 나서기 전 현지 가이드가 이러한 상황을 미리 설명하면서 “절대로 1달러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인근 애들까지 몰려들어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라는 주의하지 않았다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들의 손을 밀치거나 뿌리치며 겨우 버스에 탑승하니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이곳 델리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 현지 가이드의 첫 말이 “교수님들 수고하셨습니다.”였다. 이곳에서의 여정이 미리 머리에 그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 테레사 수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자의 집 문패  © 오수열


현지식으로 준비된 점심을 먹은 후 우리가 찾은 첫 코스는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으로부터 성녀(聖女)로 추앙받고 있는 ‘테레사 수녀’가 운영하는 ‘죽음을 기다리는 자의 집’이었다. 남유럽 스코페 태생이지만, 1947년 이후 인도에 거주하며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쳐왔고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테레사 수녀의 손길이 미친 곳을 찾는다는 것은 가톨릭 신자가 아닌 나에게도 상당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인도처럼 발전이 더디고, 빈부의 격차와 함께 계급에 따른 차별이 심한 나라에서 평생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던 현장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여느 구호 기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구에 새겨진 「MOTHER TERESA, M.C」라는 표시와 홀 중앙에 놓여있는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는 그분의 숭고한 인간애와 봉사 정신에 대해 머리가 숙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감히 “수녀님은 어디 계시냐?”는 나의 질문에 “건강이 좋지 않아 치료를 위해 미국에 계신다.”라는 안내자의 말에 쾌유를 빌 뿐이었다.

 

대영제국의 국기인 유니온제크가 전 세계에 펄럭일 때 인도 침략의 전초기지였던 캘커타에는 아직도 그 당시의 건축물들이 여전하였다. 가이드가 “저녁 식사는 매우 우아한 정취가 느껴지는 곳에서 준비했다.”라고 하는데, 현지식으로 마련된 식사에는 짙은 카레 냄새가 배어 나왔지만, 검은 양복에 멋진 나비넥타이를 맨 노신사가 연주하는 피아노와 트럼펫 선율은 식사 동안 내내 우리에게 서구식 만찬의 풍미를 더 해 주었다.

 

캘커타에서 가장 좋은 호텔로 모신다는 가이드의 안내로 파크호텔에서 첫 밤을 맞이했는데, 맙소사! 목욕탕의 수도꼭지를 틀자 새빨간 녹물이 꽐꽐 쏟아졌고, 창문에는 조그마한 도마뱀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이곳에서 제일 좋은 곳이라는데….

 

캘커타에서의 또 하나 잊혀지지 않을 사건은 다음날 새벽 갠지스강의 지류인 푸글리강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며 목욕하는 인도인들을 보기위해 동이 트기 전에 호텔을 나와 어두운 골목길을 걸을 때 벌어졌다. 어려운 주거 환경 탓에 길거리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인분(人糞)을 수도 없이 밟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인도여행에서 만이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며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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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수열 학장  

* 이 글을 쓴 오수열 교수는 조선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타이완국립정치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중국인민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했다.

조선대학교에서 사회과학대학장기획실장정책대학원장 등을 역임한 후 정년 퇴임하였으며 현재는 조선대학교 명예교수와 광주유학대학 학장, ()21세기남도포럼 이사장한국동북아학회 이사장 등을 맡아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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